전국장애인차별연대, 전장연의 출퇴근 시간대 시위 장기화로 적지 않은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위의 원인 제공자는 장애인 단체들이 20년 가까이 요구해왔지만 장애인 이동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고 있는 당국과 정치권이다.
서울 지하철은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0%를 넘는 등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30%에 미치지 못하는 등 한계가 여전하다. 국민의힘도 대선 공약집에서 장애인ㆍ노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과 인프라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미흡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 대한 설명도 없이 일부 시민들의 불편 여론에 기대어 시민들과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을 갈라치기한다는 점에서 이 대표 발언은 문제적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헌법상 평등권에 속한다. 한정된 정부예산 안에서 이들의 권리를 어떻게 하면 보장해줄 것인지, 장애인 복지에 대해 ‘시혜적 태도’를 가진 국민들을 설득할 방법을 찾는 것이 곧 집권당이 될 국민의힘의 과제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전장연의 약점을 찾아 시민불편을 여론전에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을 만든 사실이 공개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가장 대표적 단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줄여서 ‘전장연’이라고 하는데요. 이 연대단체가 작년 연말부터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언론팀에서 전장연을 적으로 규정해서 여론전 전략 문건을 작성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YTN이 이 문건을 입수해서 3월 17일에 단독으로 보도한 이후 MBC, KBS 등에서 주요하게 보도했습니다. 문건에는 장애인이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을 무너뜨리기 어려우니, 시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를 찾아내 언론에 알려야 한다는 등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네, 우선 해당 문건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요. 문건은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라고 표현하고 있고요. 장애인 단체를 '투쟁을 위해 모인 집단’이라고 표현하며 싸워 이겨야 할 적으로 규정합니다. 또한 여론전 승부는 디테일이 가른다면서 '우리 실점은 최소화, 상대 실점은 모니터링하며 확인이 필요하다' 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공사가 잡아낸 장애인단체 측 실수'라며, 장애인 단체가 휠체어 바퀴를 열차와 승강장 틈 사이에 끼워 넣은 일을 짚었는데요. 공사는 실제로 이 사진을 언론사 기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또한 장애인 전문 매체와 진보 언론에 대한 대응 방안도 제시하고 있는데요. “약자는 선하다는 기조의 기성 언론과 장애인 전용 언론 조합과 싸워야 함”, “언더 도그마가 사회 보편 흐름으로 자리 잡은 이상 언론은 이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진보 가치 높이 사는 특정 매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개인의 일탈이고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커지자 "직원의 미숙함은 곧 공사의 미숙함"이라며 공식 사과문을 내고, 해당 직원을 업무에서 배제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대응 전략에 따라 나온 이른바 ‘장애인 단체를 저격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보도자료’를 많은 언론이 그대로 보도했다는 것입니다.
확인해보니 조선일보는 [서울교통공사 ‘할머니 임종 못가 운 승객도…장애인 단체 시위 중단 요청], 중앙일보는 [‘승객이 할머니 임종 놓쳤다’ 교통공사, 장애인 시위 중단 요청]으로 동아일보는 [할머니 임종 지켜야…’ 장애인단체 출근길 시위에 공사 자제 요청]으로 서울경제는 [임종 지키러 가야하는데’ 절규에 장애인단체 ‘버스 타라] 머니투데이는 [‘임종 가야해요’ 커지는 불만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 멈춘다] 등으로 2월 22일에서 23일 사이 관련 내용이 11건이나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사 문건에서는 이를 ‘대응 잘한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18일 성명에서 “이번 사건에서도 언론매체들의 단순 받아쓰기 관행은 여실히 드러났다“며 “집회·시위를 보도할 때에는 행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도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시민불편’ 프레임에 대해서도 “이 같은 프레임 짜기는 실질적인 책임자를 가린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경고해왔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론은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가. 언제까지 이 같은 행태를 봐야 하는지 개탄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18일 논평을 통해 공사의 문건을 ‘언론공작 시도’라고 규정했습니다. 전국언론노조는 “보편적 이동권 요구를 짓밟는 서울교통공사의 언론공작 시도를 규탄한다”며 “서울교통공사 언론팀의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문서는 공공교통체계가 갖는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언론을 갈라치기와 공작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저열한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참여하시려는 이유는
“첫번째는 이동권의 중요성 때문이다. 이 분들이 외치시는게 이동권만은 아니다. 교육권 등 장애인들이 지금 누리지 못하는 부분을 얘기하는 건데, 그 중의 하나가 이동권이다. 누구보다 이동권의 중요성을 느끼는 당사자로서 저도 공감을 하고 있고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하는 마음이다.
두번째는 서로의 입장이 다른 부분을 잘 조율하고 다듬어가야 할 정치권이 부끄러운 모습 보이는 것을 관찰하게 됐다.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한사람으로서 느끼는 부끄러움에 대해서 사과 드리려고 간다. 또한 장애인 권리 관련 예산 등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이슈화가 어떤 분이 사망하거나 불편을 끼칠 때만 관심을 갖게되는 그런 문제점에 대해서도 사과드리고 한다.
이분들도 절박한 마음에서 시위하는 것이지만, 불편함을 겪는 국민들께도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드리고 싶다. 소통의 부재를 우리가 정치권이 성숙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풀어갔으면 한다.”
—이 대표와 장애인단체 사이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건가
“그렇다. 이동권 시위 기사에 ‘장애가 벼슬이냐’라는 댓글이 많다. 이게 우리 현실이다. 이제는 조금 더 큰 공론의 장으로 가져오고 싶고, 그래서 양쪽의 의견 불편한가, 어떻게 하면 서로 안불편할 수 있을까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제가 당대표도 아니고 당선인도 아닌데 제가 한번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그렇지만 중간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장애인들께는 ‘정치권에 와보니 이러이러한 어려움이 있더라’라고 설명하고, 정치권에는 ‘장애인들이 떼쓰는게 아니라 동등한 국민의 권리와 의무 다할 수 있는 것을 원한다’는 얘기를 전하려 한다.”
2001년 서울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해 탑승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지하철 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를 통해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 법, 2007년 장애인 차별 금지법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드는 결실을 이뤘다.
하지만 법 제정 뒤에도 대부분 예산부족과 책임부처 떠넘기기로 이동권 문제에 대한 솔루션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시위로 인한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저상버스 도입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은 교통약자들이 차별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권리인 이동권 제고하기 위하여 수립되는 법정계획이다.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 법」에 근거하여, 교통약자들의 이동 편의 제공을 위한 국가 정책 추진 방향을 제시하는 5년 단위 계획이다.
1차 계획(2007년~2011년)에서 보급률 31.5%…달성 실패 (2012년 말 기준 12.8%)
2차 계획(2012년~2016년)에서 보급률 41.5%…달성 실패 (2016년 말 기준 19%)
3차 계획(2017년~2020년)에서 보급률 42%…달성 실패 (2020년 말 기준 27.8%)
2020년 교통약자 이동 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7.8%에 불과하고, 서울을 제외하고는 4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울산광역시(12.3%), 충청남도(10.0%)는 10%대에 머물고 있어 지역별 격차는 심각한 상태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이동권 싸움이 격렬했던 2002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지만, 2005년 말을 바꿔서 “100%는 불가능하다”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2001년, 2002년에 벌어졌던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가 반복됐다. 2008년 지하철 화서역 사고, 2017년 지하철 신길역 사고는 목숨을 잃은 사고이고, 갈비뼈 골절, 머리뼈 골절, 안와골절, 뇌진탕 등 다치는 경우도 10여건이 넘었다.
2015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도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발표하며 “2022년까지 서울 시내 지하철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했다. 서울교통공사는 그 뒤 엘리베이터 설치에 속도를 냈고, 2021년 기준 93%(264곳)를 달성했다. 서울시는 100% 설치 목표 달성을 2025년으로 미뤄둔 상태이다.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안중에 없고 상당수의 언론들은 장애인들의 이번 시위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하는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골칫거리 정도 취급하며 막대한 양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20년 넘게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지금처럼 욕설과 혐오의 수위가 높았던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 단체 활동가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협박 수위에 혼자 밖을 나서기 두려워하는 등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받는 상황이다.
이들이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서 승하차 시위를 진행한 것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말 국회는 저상버스 도입과 장애인 콜택시 보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국비 사용을 ‘의무’가 아닌 ‘임의’ 조항으로 만드는 바람에 예산 지원이 불투명해졌다.
지방자치단체에만 맡겨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지켜본 장애인들은 대선후보로부터 약속이라도 받아 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시위 중단을 선언하면서 다음달 2일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후보들이 장애인 이동권 예산 확보를 약속해 달라고 조건을 내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시위 방식의 정당성에 대해선 논박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장애에 대한 혐오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시위를 빌미로 터져 나오는 혐오 표현은 지금껏 사회 기저에 깔렸던 장애에 대한 인식을 날것 그대로 보여 줄 뿐이다. 장애인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시위는 다시 한번 우리 사회에 장애에 대한 혐오가 만연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로 이어졌을 때 (정치인으로서) 이에 대한 공적 책임감을 갖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굉장히 신중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을) 공격하는 사람들도 (장애인의) 사회적 소수성으로 인해 이들에 의해 본인이 손해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 대표는) 겉으로는 토론을 내세우지만, 들여다보면 혐오에서 한발짝도 나아갔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장애인인 김원영 변호사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 집단에 대한 의제에서 지금 같은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곧 혐오범죄 조장으로 연결된다”며 “작은 경계 하나만 넘기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다. 정치인들은 그들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적었다.
이 대표가 협의 과정을 통해 갈등을 해소해야 할 정치적 책임은 회피한 채 ‘장애인-비장애인’ 구도로 시민을 갈라치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정치나 국가 영역의 기능은 시장 영역이나 경쟁에서 탈락한, 애초에 경쟁 상대로 여겨지지 않는 소수자 다양성과 같은 부분들을 채우는 것”이라며 “지나치게 갈라치기에 의존하면서 불평등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듯한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정부는 법을 근거로 저상버스 도입 확대를 약속하며 스스로 목표를 제시했지만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2013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절반 이상을 저상버스로 하겠다는 약속, 목표를 낮춰 2016년까지 시내버스의 약 41%를 저상버스로 바꾸겠다는 약속, 다시 지난해까지 시내버스의 약 42%를 저상버스로 하겠다는 약속 모두 허언이 됐다. 실제 저상버스 도입률은 2013년 16.4%, 2016년 22.3%, 지난해 27.8%로 아직도 30%에도 못미친다.
서울 지하철(1~8호선) 역사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역사의 비율도 2017년 89.9%, 2019년 91.4%, 지난해 93.0%로 더디게 늘고 있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과 특수교육법 개정 등 4대 입법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하고 있다. 장애인이 배우고, 일하고, 시설 밖으로 나오기 위해 필수적인 입법들이지만 이동권이 보장돼야 달성 가능한 목표들이라고 전장연은 설명했다.
이날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당시 일부 시민들은 “아침부터 왜 이러냐”면서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위를 찬성하는 목소리도 많다. 직장인 박모(30)씨는 “누가 사람들한테 미움받으려고 시위를 하겠나. 그만큼 절박하니까 저렇게 시위하는 것 아니냐”면서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하도록 만든 정부를 비판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2000년대 중반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때도 지금처럼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제는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엘레베이터를 당연하게 이용한다”면서 “모든 교통수단과 여객시설,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인 이동권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하철 시위 이후로 현재 전장연에 협박 메일 등이 수도 없이 오고 있다. 자칫하면 장애인이 혐오범죄 대상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며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석/국민의힘 대표 (2021년 12월 13일) : 많은 장애인의 권리들, 이동권부터 시작해서 학습권, 그리고 생활권, 모든 것을 저희가 되찾아드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는 또, "오늘 시위는 지하철 상하행선 모두 마비시키는 목적"이라는 글도 올렸는데요.
시위를 하는 원래 목적에 대한 언급은 없어, 자칫 불편 초래 자체만을 목표로 한단 인상을 줄 수 있는 주장입니다.
[앵커]
그리고 이준석 대표가 주장한 또 하나를 체크해보겠습니다. 바로 이건데, "2022년까지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모두 설치하겠다는 박원순 시장과의 약속을 왜 오세훈 시장 때 항의하냐", 이거 지난주에 저희가 다루긴 했는데, 워낙 중요해서 다시 한번 따져봤죠?
[기자]
20여 년 전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2001년, 수직 리프트 추락사고로 장애인 한 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명박 전 시장은 이를 계기로 2004년까지 엘리베이터를 모두 설치하겠다고 했습니다.
2015년에 박원순 전 시장 역시 2022년까지 모든 역사에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역시 안 됐습니다.
누가 시장이었는지를 불문하고, 서울시 약속은 21년간 안 지켜졌습니다.
장애인 단체는 시민의 불편에 대해 죄송하다면서도, 이렇게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게 현실이라는 점도 이해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눈에 보이도록' 시위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해 12월 31일 개정된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은 저상버스 의무도입 대상에서 시외·고속버스가 제외되고 중앙정부의 광역이동지원센터 운영비 지원이 무산되는 등 도무지 나아질 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도 시위의 효과라 해야 할까, 이제는 출근길 시민을 '볼모'로 하는 불법시위라며 적대감을 조장하는 혐오정치가 꿈틀거린다. 그 민낯은 지난 17일 언론에 공개돼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의 내부 문건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관련 기사 : <비마이너> 3월 19일 자''장애인=적?' 서울교통공사 언론공작 문건에 장애계 경악')
공사는 한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부인했지만, 우리는 이를 공사를 포함한 '구조적' 문제로 이해한다. 장애인을 억압하는 구조는 비단 지하철 운행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와 경제 구조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로 그 불평등과 차별의 구조이다.
공사는 서울시 산하 지방공기업으로 기업성과 공익성을 함께 요구받지만, 현실에서는 사회적 가치보다 수익성을 강조하는 기업가주의가 지배한다(다른 공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은 당연히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조직의 이해관계를 내면화한 문건 작성자는 '도구적 합리성'에 매몰된 상태로 여론전(!)의 승리를 위해 이동권 보장에 '충분한 공감'을 표시하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장애인들에게 이동권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왜 이러한 방식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는지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이제는 상식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 대부분 아니 전부는 '일시적 비장애인'이다. 우리는 삶의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장애가 있는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장애는 앞으로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나'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우리도 또한 '당사자'이다. 이동권은 지금 나에게도 미래의 나에게도 중요하다.
불법시위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실정법 만능주의도 문제다. 기존 법률과 제도가 장애인을 부당하게 배제하는 한, 장애를 둘러싼 투쟁은 체제에 대한 도전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 운동의 역사도 그렇지 않은가.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 머물러 요구하는 것만으로 그 완고한 질서를 바꾼 예가 얼마나 되는가.
장애인들이 출근길에 불편을 초래하고 그 때문에 큰 비난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시위를 이어가는 이유는 그 오랜 구조에 틈을 내기 위한 것일 터. 물론 보통의 시민들이 겪는 고통도 가볍지 않지만, 시위를 비난하고 장애를 혐오하는 것은 제 방향이 아니다. '을'과 '더 불리한을'이 싸우라고 그들이 설계한 마당을 벗어날 것. 오히려 이동권과 이동의 자유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연대해야 한다.
이동권의 연대가 필요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이동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도시에서 이동의 제약은 실업과 빈곤, 즉 경제적 생존의 문제로 직결되므로 누구에게나(!) 이동권 보장이 절실하다. 지금 구조에서는 당연히 장애인 쪽이 훨씬 더하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사회현상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라는 점을 얼마든지 이해한다고 해도 지하철 운행 지연 기사들은 ‘왜’라는 이 단순한 의문조차 없다.
‘장애인단체의 시위’가 ‘지하철 운행 지연’의 원인이고, 그래서 수많은 ‘시민들’이 출근길에 불편을 겪는다는 언론들의 부추김 덕분에 시위에 나섰던 장애인단체인 전국차별철폐연대의 홈페이지가 사이버 테러로 다운되었고, 시위하는 장애인단체를 처벌하라는 국민청원이 뜨는가 하면 한 시민은 전국차별철폐연대 사무실에 찾아가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했다고 <한겨레신문>은 2월 15일자 기사를 냈다.
장애인단체의 시위로 무고한 시민들이 출근길 불편을 겪고 있다는 기사들을 앞다퉈 내던 그 수많은 언론들은 자신들이 옹호했던 ‘불편을 겪는 무고한 시민들’이 ‘혐오’와 ‘차별’로 무장한 채 장애인단체를 공격하자 모르쇠로 돌아서고 있다. 고소(苦笑)를 금치 못할 일이다.
언론들이 대변한 비장애인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은 사실 장애를 가진 시민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한 결과로 이뤄진 그들만의 평화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각하지 않는 비장애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은 장애를 가진 시민이 열등한 존재여야 가능한 셈이다. 감히, '병신'(장애라는 비정상성을 가진 자들)들이 우리(비장애란 정상성을 가진 자들)의 권리와 동등해지려고 하는 그 괘씸한 시도는 그래서 언론들에게는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먹잇감이다.
언론들이 출근길 비장애시민 수백 명, 수천 명이 지하철을 타고 내린다고 해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지 않는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시민 수십 명이 지하철 승하차를 반복한다고 해서 운행이 지연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부실한 지하철 운행 시스템 속에서 인구의 5%나 되는 장애시민들은 어떻게 출근하면서 생계를 이어갈까 알려고 하지 않으며, 265만여 명이나 되는 이들이 며칠째 이어지는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로 겪는 자신들의 불편을 어쩌면 평생 견디고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문조차 하지 않는다.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권리, 배제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함께’ 누리자는 장애시민들의 하소연이 언론을 통해 ‘억지’와 ‘민폐’로 해석되는 천박한 태도 대신에 서로의 연대를 통해 환대와 지지를 받는 언젠가의 그날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