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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관련 책들을 읽을 때면,

아 내가 사회학을 공부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학문적인

관심이 있는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학부생 때 사회학을 복수전공

하면서도 사실 사회학 수업 그 자체에

엄청 매력을 느꼈다기 보다는 그 수업에서

말하고자하는 현실적인 주제들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보이지않는노동 이라는 이 책 또한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노동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고싶다는 마음과

그 문제들이 왜 문제인가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우습지만, 사실 나도 노동자다.

본인은 회사원 혹은 그냥 직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월급을 주는 입장이

아니라면 모든 사람들은 노동자다.

#노동자 라는 단어가 뿜어내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본인들 또한 노동자이면서

본인과 다른 유형의 노동에 대한 노동자에는

선을 긋고 내가 느끼는 불합리성이 모든

노동자에게는 예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착각 혹은 믿는 것 같다.

특히 노동자인지 혹은 개인사업자인지에

대한 경계와 구분이 모호해지는 현재의

노동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역시나 그렇듯이 나는 관심과 공감이

많이 가는 책들, 몰입도가 높은 책들은

중간 중간 책 내용을 많이 사진으로

찍어두는 편인데 이 책 또한 그랬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보였다.

마치 나는 단순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게 나의 문제이자 우리의 문제라고

진정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런한 점을 인지하고 있는 연구자의

솔직함에 더욱 그의 책 내용이 진솔하게 다가왔다

#새벽배송 으로 인한 편리함은

이미 보편화되었고, 가장 대표적인 기업인

쿠팡의 매출액은 우리나라에서 최상위로 꼽힌다

그러면서도 쿠팡에서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버린 뉴스같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함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나를 괴롭게한다.

사실 난 쿠팡을 사용하지 않고 있고,

새벽배송이 필요할만큼 엄청 열악한

쇼핑 인프라에 살고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난 그렇게 급한 물건을

사야하는 경우가 많은지 궁금해진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도 새벽배송이

꼭 필요해서 사용한다기 보다는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하는 것뿐일것 같다

사람들은 쿠팡 내 노동자 과로사에

대해 누가 칼을 듣고 협박한 것 이냐며

개인의 선택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선택에 의한 결과인지를 넘어서

그 선택이 죽음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게끔

한다면 그 선택은 아예 없어져야 하지 않나 반문하고 싶다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거나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해야하는 상황에 전혀 가깝지 않다면

그저 내가 누리는 편리함으로 눈을 가린다.

그러면서 개인이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고 지적하는데 아마도

그들 스스로 마음의 불편함과 그들의

소비에 책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

만약 그것에 대해 전혀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런 댓글을

남길 이유 자체도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외치는 워라밸은

당연하지만 누군가의 워라밸을

위해서 나의 편리함이 깨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회의 모습을

한국이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그 편리함은 진정으로

편리한다기 보다는 편리하다고

세뇌받는 기업의 마케팅에 불과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볼만하다

#소비문화 사람들은 기업이

바뀌어야할 문제라고 쉽게 말하지만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소비자 뿐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누리는

편리함의 이면을 합리화하기 위한

다 각자의 변명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한국 사회가 헬조선에서 벗어나는것은

나의 개인적 차원에서의 워라밸만

이룩해서는 달성될 수 없는 것이다

노동문제를 볼 때 성별의 문제를

떼놓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여성이 주를

이루는 노동들이 사실 얼마나 저평가 되었는지

사회적으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노동이

여성의 성별 역할이라는 고정관념 아래

가정에서 이뤄지는 가사노동의 범주로만

바라봄으로써 정당하지 않은 비용으로

노동력을 평가절하 한 것은 아닐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데 학교의 급식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 아이들을 볼모로 삼는다는

이야기는 마치 자식을 위해 희생하야만 하는

가족 내의 여성들(어머니, 여동생, 누나 등)이

가사를 전담하거나 과거에 남성의 가족구성원을

서포트는 하는 위치로 보는 듯한 관점이 반영된 것 같다

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해당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는가

난 개인적으로는 계량적인 연구방법론에

스스로가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계량적이고 정략적인 차원에서 접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나의 성향의 차원에서 볼 때는 단순히

수치를 가지고 혹은 그 수치 자체로 마치

정답인듯 마냥 혹은 그것이 그 자체로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지만 정답은 수많은 토론과

맥락과 비정형화돼고 비정량화된 것들에

기반이 갖춰줘야만 그 수치가 비로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서로의

주장을 최대한 최대한 다양한 근거들과

논리를 바탕으로 생각이 교환되는 과정이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 같다.

특히 어떤 특정한 학위나 경험을

가진 집단 혹은 사람의 발언에

질문을 던질 수 없는 환경은 가장

지향되어야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그러한 생산적인 대화를 가로막는

근본적인 계급화된 문화가 있는 듯하다

 

어떤 포럼이나 컨퍼런스 관련 기사들을 보면

대부분의 연사들은 남성이다 혹은 1-2명의

여성 연사들이 있거나 혹은 아예 없다

사람들은 남성 연사가 대부분인 것에는

의아함을 제기하거나 그것이 특혜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이 전문가로써

주를 이루는 것에는 역차별 혹은 특혜라고 치부한다

성별을 떠난다면, 그것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전문성의 차원에서 충분히 검증되어야 할것이고

그러한 전문성이 그 차이가 난다고 말할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면 댜양한 관점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성별과 나이, 인종 등은 최대한 특성을

살리는 것이 더욱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 할 것이다

비슷한 백그라운드과 경험과 전문성

삶의 주기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논의에서

어떠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논의가 가능할까라는 생각

지금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 혹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전반적으로 가진 문제들 것이라고 본다

특정한 출신으로 이루어진는 집단화된

체제가 사회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다

내가 가장 공감이 가던 부분이다.

학위의 문제, 출신의 문제 등

마치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하게 평가를 부풀리는 느낌

실제로 그러한 주제들에

가장 가깝게 있고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들을려는

자세보다는 그 권한에 의지하여

그들의 말이 엄청난 통찰이 있는 듯

행동하는 모습들을 보는게 ㅎㅎㅎ

#학벌주의 #동문회 등이 대표적인 사례같다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야

서로에게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경험을 공유하는

그들끼리의 아주 사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현실에서는 그것이 누군가의 신뢰를

얻고 발언의 기회를 얻거나 과하게 편중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궁금해진다

#플랫폼노동

균형을 잡는 것은 어렵지만

포기해서는 안돼고, 특히 그것이

자율성이라는 이름을 책임을 전가하거나

포기해서는 더욱 안될 것이다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이

점점 기본이 아닌게 돼고

특수성이라는 이름으로 예외를

두려고 하는 시도들은, 지금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노동을 통해서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사람들인 이상 그 속도만 다를뿐

나에게도 결국 다가올 미래일 수 밖에 없다

책은 어렵지 않으면서, 저자의 연구분야와

실제 연구 사례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의

경험들이 아주 적절히 녹아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으면서도 현실사회에서 우리가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들에 눈을 뜰 수 있게끔 해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책들을 찾아 읽어보면 좋겠다

#도시의승리 도시경제학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책인데, 도시를 단순히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이나 공간으로써 뿐만 아니라

도시가 우리의 인류 공동제 그리고 경제와 문화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도시의 성공이 왜

인류의 성공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도시가 단순한 부동산으로 이뤄진

땅과 건물로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자

사회의 정답지로써 어떻게 작용되었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알 수 있게 해줬던 책 같다

도시를 통해서 내 나름의 답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잘 이뤄질지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도시를 공부함으로써

내가 얻게 될 실제화돼고 눈에 보이는

지식과 경험 그리고 사례들이

나에게 또다른 길과 관점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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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근본과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는데, 특히나 인생을 살아가면 가장

생존의 측면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봤을때

먹는 문제가 먼저 떠올랐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 한다고 해도 그 돈으로

사 먹을 음식이나 식량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농업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킨 적은 없지만 늘 농업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더 관심이 생기고 생존의 측면과 국가적인

안보(안정)의 측면에서 그 중요성을 항상 상기하게 된다

#식량자급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가 늘 #식량안보 에 취약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선진국들의 농업 시스템에

관심이 갔었고 그래서 네덜란드와 같은

작은 나라가 어떻게 식량 수출국이 될수 있었는지

매우 흥미롭게 리서치를 해본적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농업에 대해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내가 생각한것보다

경쟁력이 있는 산업이 될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확장성의 측면에서 계속

잠재력만 뿜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답답함도 생겼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이 책을 읽는 도중

미국주식에 상장되어 있는 식량 기업의

주식을 사모으기 시작했다는 점 ㅋㅋㅋㅋㅋㅋ

생각보다 더 매력적인 분야라고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늘 기록하는 편인데 사실 최근의 읽은 책들은

그런 정도의 책까지는 없었고 이 책도 앞으로의

비전이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현황에 대해 매우 다채롭고 상세하게 기술된 점이 좋았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봐도 좋겠다

농업을 단순히 1차 산업이 아니라 무수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자 경제영역으로

인식하고 안보의 측면에서 접근할수 있기를

 

#고등교육 이라는 #대학

인구감소라는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리고 그 수요가 예전과 같지 않을때

어떻게 변화해가야할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골랐는데 ㅎㅎㅎㅎㅎ

내용들이 다 미국 대학의 사례였고

어떤 구체적인 변화에 대한 거시적인

제안보다는 현재에서 이미 하고 있는 수준의

사례에 대한 배경을 나얄한다는 느낌이었다

 

중간에 책을 덮을까하다가 대충이라

끝까지 훑어보자는 생각으로 끝을 냈다

이 책은 굳이 추천할 생각은 없음 ㅎㅎ

#한강소설 #흰 처음에 책 읽을때는

작가의 짧은 일기 같은 건가 싶었는데

분명히 화자가 있고 흰 것과 관련된 소재를

바탕으로 한 페이지마다 짧은 글이 써있다

예전에 채식주의자 책을 읽을 때도

몰입도는 높았으나 조금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특유의 문체가 뭔가 사람을

처연하고 차분하게 누르는 느낌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어머니와 화자 그리고

이미 태어나마자 죽음을 맞았던 형제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인것 같았다

근데도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건지

작가의 의도가 와닿을만큼 내가

충분한 문학적 능력이 부족한걸까 싶기도

방금 이 책이 삶과 죽음이라는

측면에서 쓰여진 소설이라는 설명을

읽었지만, 음…끄덕이게는 되지만

그 통찰을 내가 느낄만큼이지 않았던것 같다

괜히 뭔가 오기를 부리면서

한강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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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범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면서 전세제도 자체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본질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이는 집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안정적인 쉼터가 아닌 돈, 투자, 자본의 관점으로만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접근 자체가 부실한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어떤 해답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회주택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기 보다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전세라는 시스템 자체가 근원적인 문제 그리고 대출에 따른 부담을 누가 지고 있는가, 누가 수혜를 받고 있는가, 모순적인 행태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볼수 있었다.

나도 현재 집을 전세자금 대출을 통해서 얻었고 그 이유는 월세 보다 전세 대출 이자를 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내가 전세금 전체를 내 돈으로 지불해야했다면, 절대 이런 선택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 돈을 누군가에게 무이자로 담보로 맡기는 것에 대한 불안이면서 그 돈을 통해 내가 포기해야하는 투자기회(이자 포함)에 대한 비용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대출을 통해서 전세금을 마련하든 나의 돈으로 마련하든 이 돈을 확실히 돌려 받을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주도록 우리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는 이상 보호받아야할 세입자의 권리는 집주인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정해지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집주인이 돈을 돌려줄수 있음을 증빙하고 보증하는 방식이 되어야하지만 (혹은 세입자에게 그 집을 아예 주겠다라던가) 그렇게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집값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항상 느꼈던 점은 집값이 올라가도 야단법석이고 내려가도 야단법석이라는 점이다. 집값이 안정되도록 노력하면 사람들는 이를 싫어한다. 그 원인에서 전세제도의 허점이 드러나고 집을 거주의 공간이 아닌 인생의 모든 것을 투자한 자본으로만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정책대출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이익은 다주택자와 건설업자에게 갈 것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거주권을 보장받아야한 무주택자들에게 전가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느꼈던 점은 정말 집을 소유해야하는가? 우리가 집을 서유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 중 첫번째는 집값 상승에 편승하여 억대에 가까운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이고 두번째는 불안한 거주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집값이 무한대로 상승해야만 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그리고 그 상승을 견인하는 것이 정말 순수한 수요와 공급에 의한 것인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세입자라고 할지라도 주거 안정성을 충분히 보장받도록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의 저자는 사회주택을 그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사회주택에 대해서 근본적인 와닿음은 다소 부족했다. 좀 더 디테일하게 현재의 공공주택 정책을 어떻게 더 거시적 차원에서 확장할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주택문제와 정책에 대해 인식할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근본적인 우리나라의 문제 해결에 국토균형발전이 가장 절실하다는 점이 더 확인되는 중. 우리는 서울이라는 공화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가.

사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은 항상 잠복해 있었다.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해도 다음 날 0시부터 확 정일자의 대항력이 생기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임대 인이 전세 계약 직후 대출을 받아 그 집에 저당권이 설정되면 세입 자의 보증금이 후순위채권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임대인이 다음 세입자가 내는 돈을 받아서 주겠다며 새 임차인이 구해질 때까지 보증금 지급을 미루는 사례는 더 흔했다. 그러나 이는 일탈행위 또는 제도의 사각지대 정도로만 치부되었고,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르는 한'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다 p.20

만약 임대인이 전세를 끼고 갭투자로 집을 살 때는 어떨까? 최근의 깡통 전세는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100%도 넘는 경우가 많지 만, 대개 전세보증금은 집값의 50~80%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으 니 편의상 80%로 잡아보자. 그럼 5억 원짜리 집의 전세금이 4억 원 이라는 이야기니, 다주택자 입장에서는 자기 자본 1억 원만 있으면 된다. 여기서부터 실수요자(1주택자)보다 투자자가 유리해진다.

그뿐이 아니다. 1주택자는 빌린 돈 2억 원에 대해 본인이 이자 를 낸다. 그런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빌린 돈 4억 원은 무이자다.

임대인 즉, 다주택자는 실수요자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동원할 수 있 을 뿐만 아니라 이자도 내지 않는 것이다(이를 자신이 거주할 집이 이미 있는 경우의 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적으로 전세자금대출을 확대하면 어떤 효 과가 나타날까? 전세금 대출의 경우 대개 보증금의 80%까지 빌려 준다(신혼부부에게는 90%까지 빌려주기도 한다).

이때 전세금이 집값의 80% 정도고 그에 대해 80%를 대출해준다면, 결국 집값의 64%까 지 투자자들을 위한 자금을 제도적으로 공급해주는 셈이다. 거기 에 대한 이자는 임차인이 낸다. 임차인은 다주택자가 집을 살 돈을 160%에 대해서는 무이자로, 64%에 대해서는 본인이 이자를 내면서 빌려주는 것이다 p.22

 

대출금 외에도 세입자 자신의 돈까지 합친 대한민국의 전세자금 총액은 얼마일까?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세와 반전세를 합쳐 1056조 원이라고 한다.5 전세자금 대출액은 그중 약 17% 정 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는 세입자들의 부담을 그 정도 덜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그만큼 제도적으로 대한민국의 집값을 떠받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전세 제도의 가장 큰 비극은 세입자들도 '집값 상승 동맹'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증금을 무사히 받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는 전세 사기와 같은 일탈행위 때문이 아니라 전세의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에 따른 것이다. 시세가 하락해서 다음 세입자에게 받을 보증금이 더 적어지는 역전세나, 심지어 집 값이 전세보증금 밑으로 떨어진 깡통 전세 때문에 생기는 피해가 그 증거다.

전세의 본질은 집값이 계속해서 오르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세입자의 보증금 마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악 의적으로 세입자를 속이는 전세 사기가 아니더라도, 애초부터 전세 는 마치 '폰지사기'와 같이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집이 계속 지어지고 그 집값이 계속 오르던 시 전에 이를 깨닫지 못했다. P.28

하지만 생각해보자. 30년 동안 저축해도 살 수 없는 집값이니 대출 규제를 풀어달라고 한다. 그 말을 뒤집으면, 그렇게 대출받은 돈은 30년 동안 저축해도 갚을 수 없는 금액이라는 뜻이 된다. 결국 돈을 벌어서 갚지 못하니 집을 팔아서 부채를 갚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집값이 올라야 한다.

현재 기준으로 30년이 걸려도 못 사던 집을 이제 조카 세대에는 40년, 자식 세대에는 50년이 걸려도 못 사 게 되더라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은행 입장에서도 집값이 올라야 한다. 돈을 빌린 이가 성실하게 원리금을 갚아주면 상관없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담보물인 주택을 팔아 돈을 회수해야 하는데 집값이 물가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다면 곤란해진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모두가 집값 안정을 바라는 동시에 아무도 집값 안정을 바라지 않는다.

이 와중에 주택은 점점 더 다주택자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시 장이 과열되는 가격 상승기에 영끌과 패닉 바잉으로 집을 마련했던 이들은 금리가 오르면 하우스푸어가 되어 곡소리를 내게 된다. 대 출금을 갚기 힘들어진 이들이 집을 내놓기 시작해도 매수자는 나타 나지 않으니 집값은 내려간다. 이때 나온 집들은 누가 사들일까? 결 국 자금 여유나 담보력 있는 다주택자들이다. P.42

전세 위기 극복도 마찬가지다. 앞서 현재의 전세보증금을 차분하게 낮추고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 임대인들이 빚을 내야 한다고도 했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의 성격도 마찬가지로 장기 저리 공급자금융이다. 대출을 받은 임대인들이 그 이자를 일부 월세로 받고자 한다면, 이는 임차인에 게 부담이 된다. 그러니 임차인에게 전가될 부담을 줄이려면 임대료 규제도 필요하겠지만, 임대인을 위한 장기 저리 금융도 필요할 것이다. P.48

나라가 경제적으로 잘살게 될수록 자가소유율이 높아질 것이라 생 각하기 쉽다. 외국 사례들을 보면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깝다. 복지 국가일수록 사회주택의 비중이 높고, 자가소유율은 우리와 비슷하 거나 오히려 낮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는 '내 집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라기보다 '세입자도 마음 편히 사는 나라'라고 봐 야 할 것 같다. P.104

인구 증가가 아니라 정체 내지는 감소, 노동의 유연화에 따른 사회 양극화나, 여기에 대응하는 일자리 창 출과 지역 역량 강화와 같이 이 시대가 직면한 과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시대에 맞는 인구, 산업구조와 이에 따른 도시의 낙후 또는 쇠퇴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대응 전략 중 하나는 공급자에게 맞춰졌던 무게중심을 수요자와 사용자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주거 공간 은 다양한 산업 형태 종사자, 가족 구성, 사람 들을 위한 주거 서비 스, 커뮤니티 프로그램과 공간을 같이 제공하는 종합과 융합의 플 랫폼 역할을 해내야 한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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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심이 있는 것, 말하고 싶은 것, 변화시키고 싶은 것. 그런 것들을 마주할 수 있는 책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의 특징은 내가 메모하고 싶은 문구들이 엄청 많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라는 책은 제목 자체로 나의 지향점과 비슷하다. 끊임없는 논쟁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듣고 이해할 기회를 가지고 또 다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대화다. 대화 중에서 쟁점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한 논리적인 상호작용이다.

아래에 책 문구들을 기록하고 다시 강조하고 싶은 문장들을 선택하면서, 공감을 하면서도 예전과 같은 불타오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점점 침묵을 선택하는 쪽으로 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 맞는 말이지만 올바른 주장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고 어떤 생각을 가지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

그런데 너무나 빨리 지친다.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줄어들기는 커녕 더 흔하게 더 자주 목격되고 발생된다. 그래서 더 분노해야하는데 갈수록 마주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상황이 너무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이 불편함을 내가 참겠다는 것 조차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이기적이고 선별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자극적인 범죄에 대한 기사들과 댓글을 냉철히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더 공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공부가 아니라 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지금 직장에서 하는 일과 별개로 내가 이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이 책의 저자인 아리안 사비시는 내가 논쟁하고 싶은 대부분의 주제들을 아주 깔끔하고 깊이있게 이 책을 통해 담아낸 것 같다.

우리는 개인 대 개인으로 논쟁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길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사회에 끼친 유해성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실에서 삼자 대면을 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남성성이 폭력성으로 발현되는 것을 지금까지 묵인하고 인정하고 그 사회를 유지시켜온 것들에 대해 분석하고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함이 점점 더 명확해지는 요즘이다.

특정 그룹이 혐오와 범죄의 대상이 되는 세상 그 자체가 문제고, 어느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지금 당장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침묵과 분열을 강조하는 기성사회의 폭력 해체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억압의 언어는 폭력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폭력입니다. 억압의 언어는 지식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지식을 제한합니다. 윤리 없는 법의 악의적 언어든, 소수자를 소외하려고 고안된, 인종주의적 약탈을 문학적 분칠로 감춘 언어든. 억압의 언어는 반드시 몰아내고 개조하고 규명해야 합니다. - 토니 모리슨,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1993)

남성성(masculinity)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롭다. 하지만 화학 요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유독성과 이런저런 부작용 이 있는 걸 알지만 거기서 이득을 얻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포기가 안 되는 것이다. 남성들은 그들에게 권력, 자율성, 사회적 지위를 약속하는 바로 그 행동들로 인해 해를 입는다. 가장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지만 그로 인해 더 큰 경제력과 자율성 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불행한 가정환경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도 더 키울 수 있다.

이렇듯 남성 들이 남성성의 이상을 충족시킬 때의 이점은 일반적으로 부작용 을 눈감을 수 있을 만큼 크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오로지 부작용만 있다. 여성성(femininity)의 성취란 육체적으로 매력 있고 상냥하며 온화하고 공감 능력과 배려심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그 것은 곧 타인, 특히 남성의 성적, 정서적, 가정적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자신을 지우고 희생하며 자율성을 양도해야 한다. 여성이 이러한 여성성의 이상을 충족하 지 못하면 투명 인간 취급받고 외면당하거나 적대감과 폭력에 노출된다. P39

갈 색 피부의 이민자로 수십 년을 살면서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낸 적이 없음을 깨닫고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 같은 사람의 분노는 걸핏하면 타인의 안전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그로 인 해 실제로 위협받는 것은 아버지 자신의 안전이지만) 분노 표출은 전적 으로 금지되었다. 줄을 서 있다가 새치기를 당해도 혀를 깨물며 참 았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고도 분노를 속으로 삭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무례하게 구는 상황에서도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나는 피부색이 밝아서 가끔 백인으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이는 분노를 표현할 여지가 내게 더 많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화내는 여성은 인기가 없지만 나의 분노는 (내가 백인 여성처럼 보이기에) 두려움보다 는 경멸과 조롱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 높다. P.49

흑인 남성을 원래 공격적인 존재로 묘사하면 결국 그들에게 압도적으로 사용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경향 이 있다. 하지만 <컬러 퍼플〉은 결코 흑인 남성이 유별나게 폭력적 이라고 암시하지 않고 오히려 흑인 남성이 폭력적으로 사회화된다 는 사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회화된 이유는 그들이 흑인 이라서가 아니라 남성이라서다. P.53

"남자들이 여자에게 위협을 느끼는 이유가 뭐야?" 남자인 친구에게 물어봤다. "여자들이 자기를 비웃을까 봐 두려워하지. 자기네들의 세계관을 약화시킬까 봐." 그 친구가 말했다. 나는 나중에 여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여자들이 남자에게 위협을 느끼는 이유가 뭐야?""살해당할지도 모르니까 두렵죠." 그들이 말했다. - 마거릿 애트우드 <두번째 말> 2011 / P.90

영국에서 살해당한 전체 여성의 절반은 파트너 혹은 전 파트너 의 손에 죽었고(남성의 경우 이 비율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매주 두 명의 여성이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쓰고 편집하는 데 2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영국에서는 3백 명 넘는 여성이 살해당했고 그중 92퍼센트는 남성의 범죄였으며, 특히 절반가 량은 파트너나 전 파트너가 범인이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살 해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통계적으로 봤을 때 여성은 자신 이 연인으로 사귀었던 남성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여성은 연인을 잠재적인 살인자로 생각해야 하는 인지부조화를 피할 수 없는 것 이다. 게다가 폭력적인 파트너와 헤어지려고 하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살해당할 위험에 취약해진다." 도망치는 것도 종종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P.95

남성성은 힘과 지배력을 과시하고 약점이나 취약성을 억압하는 것이 특징이다. 남성성은 신봉자들에게 용기, 자기주장, 독립성, 체 력을 단련하고 발휘할 것을 요구하고 종종 공격성, 폭력, 과장된 (이성애적) 성욕 과시에는 보상을 한다. 시스젠더, 이성애적 규범에 서 벗어나는 것을 적대시하고 남성 지배를 위협하거나 남성의 신 체적, 정서적 욕구를 우선시하지 않는 여성은 응징한다.

영국에서 남성에 대해 친절과 배려를 연상하는 사람은 성인의 3퍼센트에 불 과했고 존중, 지지, 정직을 연상하는 사람은 단 1퍼센트였다." 정서적 지원이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에서도 젊은 남성의 절반 이상 이 그런 것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3분의 2는 더욱더 남자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고 했다.

남성성의 이상에 순응해야 한다는 압력은 한쪽 눈을 뜨고 하는 기도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시작된다. 남자아이들은 여전히 슬픔.고통, 연민, 사랑을 드러내지 말라는 말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 로 듣고 자란다. 그러한 메시지는 모든 방향에서 날아온다. 97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활동가 앤드리아 드워킨은 1983년 연설에서 남성들은 다른 남성의 잘못에 맞서고 도전하기 위해서 하는 일 이 거의 없다고 한탄했다. 남성들은 그저 페미니스트들이 자기들 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지겹도록 불평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이봐,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 포르노 제작 자들한테 가서 말해. 포주들한테 가서 말해. 전쟁 도발자에게나 말 해. 강간을 옹호하고 축하하는 인간들, 강간에 호의적인 사상가들이 나 붙잡고 말하라고, 나에게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난 여자일 뿐이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 남자들이 당신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거지. 그들이 공적인 무대에서 당신을 대표한다고 말하고 있어. 그들이 당신을 대표하는게 아니라면 그들한테 가서 말을 해야지. P.118

* 말을 해봤자 치러야 할 대가는 크고 돌아오는 것은 부실하다. 기 이한 질문들이 피해자에게 쏟아진다.*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겁니 까?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까? 이게 그 사람에게 무 슨 의미인지 모릅니까?" 케이트 맨은 특히 이 마지막 질문이 '힘퍼 시(himpathy)', 즉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ne)에게 자연스럽게 향하 는 과도한 공감(sympathy)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 시도 유색인종 남성에 대해서는 그리 선뜻 생기지 않는데, 이 부분은 뒤 에서 다시 얘기하겠다.) 학대당한 여자가 느끼는 공포보다 누명을 쓴 남자가 느끼는 공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그 래서 걸핏하면 여자 쪽이 거짓말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부터 하고 P.184

섹스에 대해서 거짓말하고 섹스를 하면서 고통받는 것은 우리 가 불완전한 세계에서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이다. 권력은 우리 가 자신의 욕망에 순응하도록 내몰고 우리는 그 욕망에 부응하지 못할 때 화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한다. 여성은 그들 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남성에게 굴욕감을 주지 않기 위 해 오르가슴을 연기한다. 남성이 불쾌해하는 것이 잠재적으로 더 위험하기 때문에 성적 쾌락을 가장하는 편이 낫다.

캐서린 앤젤이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에서 지적했듯이 여성 자신의 쾌락에 대한 생각이 여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여성이 섹스에서 (그리고 다른 영역에서도)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껄끄럽다. 우리는 여성이 자기 자신도 뚜렷이 알아볼 수 있는 욕망을 쉬이 형성 할 만한 조건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P.192

철학자들은 발화가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경우를 화행(5A, speech act)이라고 지칭한다. 1962년에 철학자 J. L. 오스틴0.1. Austin)은 뭔가를 말하는 것은 뭔가를 하는 것"임을 관찰하고 처음으로 화행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이론화했다.26 발화는 단순히 의미 있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입 밖으로 냄으로 써 실제로 뭔가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말은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상사가 "넌 해 고야!"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 사실에 의하여 그 말을 듣는 이가 직 장을 잃는 사태가 발생한다. 성관계를 하는 중에 상대가 "그만하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성관계에 대한 그들의 동의가 실질적으로 철회된 것이다. 따라서 이때 성행위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성폭행이 되고 일부 나라에서는 범죄로 간주된다. 말이 행위의 지속을 도 덕적 과오, 나아가 위법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듯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어떤 것을 바꿀 힘을 지니는 때가 제법 많다.P. 243

사회 규범은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지만 규범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우리가 접하는 정보에 민감하다. 담배에 대한 규제를 본받아 육류 제품이나 패스트패션 포장지에도 도덕적 경고문이 실 린다면 어떨까?

이 상품은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에서 한 달에 90달러를 받는 노동자가 만들었습니다. 원단은 토양 황폐화와 물 부족을 일으키는 면화 농업에서 생산된 면과 화석 연료에서 추출한 아크릴 혼방입니다. 이 제품은 세탁시 미세 플라스틱을 해양에 배출합니다.

나의 제안은 반쯤만 진지하다. 자본주의 정부가 이런 식으로 소비를 억제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타블로이드 신문의 헤드라인이 상상된다. 대중이 무슨 죄, 고기를 포기하라니' 하지만 경고문 에 제시된 정보는 사실이고, 그러한 조치가 지나친 훈계질이나 우 리의 의사 결정에 대한 부적절한 개입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소비 비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부재 자체가 이미 하나의 도덕적 입장이다. P.344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사례로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의류 재봉사들 은 그냥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유색인종 여성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사망하거나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은 그냥 운 나쁜 사람이 아니라 주로 남반구의 유색인종이다. 남반구 인구, 저임금 노동자, 환경이 평가절하되는 이유는 경제가 그 평가절하를 바 탕으로 삼아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 점이 이 시스템에는 자명하다.

세계의 공장들은 남반구에 있고 그곳의 인력은 주로 저임금 유색 인종 여성 노동자다. 상황이 이렇게 지속되는 한, 북반구의 페미니즘 운동과 인종차별반대 운동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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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쉬워보이는 책이라서 골랐는데 그런 책일수록 더 기억에 남는건 없는것 같다.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특히 일본 작가가 쓰는 HR 관련 된 내용은 특별할 것이 있을까 하고 기대를 하고 보면 항상 너무 평범하고 뻔한 느낌이라 읽고나면 허무하다. 대부분 일본 작가들이 쓴 책에서 좀 공통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사회과학 서적이 아닌 자기계발이나 투자 등의 개인적인 것들에 대한 조언류의 내용들이 그런한 것 같다.

그래도 그나마 생각해 볼수 있는 건 이 책에서 제시하는 리더의 안목에 충족하는 인재가 과연 나랑은 얼마나 가까운가 하는 것이다. 내가 리더로써 사람을 발탁해야하는 포지션에 언제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써 조직에 있을 것인가 어떤 점을 드러내고 어떤 점을 감추거나 자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그런 인재들에 부합하는 점은 극대화 될수 있도록 기피해야할 대상의 유형에 나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것을 좀 반선해볼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특별한 인사이트를 이 책에서 찾기를 원한다면 적합하지 않은것 같고 가볍게 훑어 읽는건 괜츈한듯. 한마디로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대충 훑어만 보시라는 것.

리더인데 이 책을 읽어야만 인재를 구별해낼수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고, 인사관리 혹은 발탁 업무를 처음 맡게 되는 분들께 그래도 나름의 기준점을 제시해줄수 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 나도 HR에 관심이 있는데…ㅎ 순전히 내가 사람을 잘 본다는 자신감 그리고 사람을 분석하는걸 좋아한다는 것 때문이긴 하다. 그럴수록 자기 객관화를 더 하게 되는데 문제점을 알지만 쉽게 고치지 못하니 내 스스로 HR의 입장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렇게 하다보면 주위 사람들과 앞으로 함께할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이 나와 함께 일하고 싶도록 만들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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