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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심이 있는 것, 말하고 싶은 것, 변화시키고 싶은 것. 그런 것들을 마주할 수 있는 책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의 특징은 내가 메모하고 싶은 문구들이 엄청 많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라는 책은 제목 자체로 나의 지향점과 비슷하다. 끊임없는 논쟁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듣고 이해할 기회를 가지고 또 다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대화다. 대화 중에서 쟁점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한 논리적인 상호작용이다.

아래에 책 문구들을 기록하고 다시 강조하고 싶은 문장들을 선택하면서, 공감을 하면서도 예전과 같은 불타오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점점 침묵을 선택하는 쪽으로 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 맞는 말이지만 올바른 주장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고 어떤 생각을 가지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

그런데 너무나 빨리 지친다.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줄어들기는 커녕 더 흔하게 더 자주 목격되고 발생된다. 그래서 더 분노해야하는데 갈수록 마주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상황이 너무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이 불편함을 내가 참겠다는 것 조차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이기적이고 선별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자극적인 범죄에 대한 기사들과 댓글을 냉철히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더 공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공부가 아니라 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지금 직장에서 하는 일과 별개로 내가 이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이 책의 저자인 아리안 사비시는 내가 논쟁하고 싶은 대부분의 주제들을 아주 깔끔하고 깊이있게 이 책을 통해 담아낸 것 같다.

우리는 개인 대 개인으로 논쟁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길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사회에 끼친 유해성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실에서 삼자 대면을 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남성성이 폭력성으로 발현되는 것을 지금까지 묵인하고 인정하고 그 사회를 유지시켜온 것들에 대해 분석하고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함이 점점 더 명확해지는 요즘이다.

특정 그룹이 혐오와 범죄의 대상이 되는 세상 그 자체가 문제고, 어느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지금 당장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침묵과 분열을 강조하는 기성사회의 폭력 해체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억압의 언어는 폭력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폭력입니다. 억압의 언어는 지식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지식을 제한합니다. 윤리 없는 법의 악의적 언어든, 소수자를 소외하려고 고안된, 인종주의적 약탈을 문학적 분칠로 감춘 언어든. 억압의 언어는 반드시 몰아내고 개조하고 규명해야 합니다. - 토니 모리슨,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1993)

남성성(masculinity)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롭다. 하지만 화학 요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유독성과 이런저런 부작용 이 있는 걸 알지만 거기서 이득을 얻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포기가 안 되는 것이다. 남성들은 그들에게 권력, 자율성, 사회적 지위를 약속하는 바로 그 행동들로 인해 해를 입는다. 가장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지만 그로 인해 더 큰 경제력과 자율성 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불행한 가정환경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도 더 키울 수 있다.

이렇듯 남성 들이 남성성의 이상을 충족시킬 때의 이점은 일반적으로 부작용 을 눈감을 수 있을 만큼 크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오로지 부작용만 있다. 여성성(femininity)의 성취란 육체적으로 매력 있고 상냥하며 온화하고 공감 능력과 배려심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그 것은 곧 타인, 특히 남성의 성적, 정서적, 가정적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자신을 지우고 희생하며 자율성을 양도해야 한다. 여성이 이러한 여성성의 이상을 충족하 지 못하면 투명 인간 취급받고 외면당하거나 적대감과 폭력에 노출된다. P39

갈 색 피부의 이민자로 수십 년을 살면서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낸 적이 없음을 깨닫고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 같은 사람의 분노는 걸핏하면 타인의 안전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그로 인 해 실제로 위협받는 것은 아버지 자신의 안전이지만) 분노 표출은 전적 으로 금지되었다. 줄을 서 있다가 새치기를 당해도 혀를 깨물며 참 았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고도 분노를 속으로 삭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무례하게 구는 상황에서도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나는 피부색이 밝아서 가끔 백인으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이는 분노를 표현할 여지가 내게 더 많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화내는 여성은 인기가 없지만 나의 분노는 (내가 백인 여성처럼 보이기에) 두려움보다 는 경멸과 조롱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 높다. P.49

흑인 남성을 원래 공격적인 존재로 묘사하면 결국 그들에게 압도적으로 사용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경향 이 있다. 하지만 <컬러 퍼플〉은 결코 흑인 남성이 유별나게 폭력적 이라고 암시하지 않고 오히려 흑인 남성이 폭력적으로 사회화된다 는 사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회화된 이유는 그들이 흑인 이라서가 아니라 남성이라서다. P.53

"남자들이 여자에게 위협을 느끼는 이유가 뭐야?" 남자인 친구에게 물어봤다. "여자들이 자기를 비웃을까 봐 두려워하지. 자기네들의 세계관을 약화시킬까 봐." 그 친구가 말했다. 나는 나중에 여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여자들이 남자에게 위협을 느끼는 이유가 뭐야?""살해당할지도 모르니까 두렵죠." 그들이 말했다. - 마거릿 애트우드 <두번째 말> 2011 / P.90

영국에서 살해당한 전체 여성의 절반은 파트너 혹은 전 파트너 의 손에 죽었고(남성의 경우 이 비율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매주 두 명의 여성이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쓰고 편집하는 데 2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영국에서는 3백 명 넘는 여성이 살해당했고 그중 92퍼센트는 남성의 범죄였으며, 특히 절반가 량은 파트너나 전 파트너가 범인이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살 해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통계적으로 봤을 때 여성은 자신 이 연인으로 사귀었던 남성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여성은 연인을 잠재적인 살인자로 생각해야 하는 인지부조화를 피할 수 없는 것 이다. 게다가 폭력적인 파트너와 헤어지려고 하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살해당할 위험에 취약해진다." 도망치는 것도 종종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P.95

남성성은 힘과 지배력을 과시하고 약점이나 취약성을 억압하는 것이 특징이다. 남성성은 신봉자들에게 용기, 자기주장, 독립성, 체 력을 단련하고 발휘할 것을 요구하고 종종 공격성, 폭력, 과장된 (이성애적) 성욕 과시에는 보상을 한다. 시스젠더, 이성애적 규범에 서 벗어나는 것을 적대시하고 남성 지배를 위협하거나 남성의 신 체적, 정서적 욕구를 우선시하지 않는 여성은 응징한다.

영국에서 남성에 대해 친절과 배려를 연상하는 사람은 성인의 3퍼센트에 불 과했고 존중, 지지, 정직을 연상하는 사람은 단 1퍼센트였다." 정서적 지원이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에서도 젊은 남성의 절반 이상 이 그런 것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3분의 2는 더욱더 남자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고 했다.

남성성의 이상에 순응해야 한다는 압력은 한쪽 눈을 뜨고 하는 기도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시작된다. 남자아이들은 여전히 슬픔.고통, 연민, 사랑을 드러내지 말라는 말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 로 듣고 자란다. 그러한 메시지는 모든 방향에서 날아온다. 97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활동가 앤드리아 드워킨은 1983년 연설에서 남성들은 다른 남성의 잘못에 맞서고 도전하기 위해서 하는 일 이 거의 없다고 한탄했다. 남성들은 그저 페미니스트들이 자기들 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지겹도록 불평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이봐,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 포르노 제작 자들한테 가서 말해. 포주들한테 가서 말해. 전쟁 도발자에게나 말 해. 강간을 옹호하고 축하하는 인간들, 강간에 호의적인 사상가들이 나 붙잡고 말하라고, 나에게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난 여자일 뿐이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 남자들이 당신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거지. 그들이 공적인 무대에서 당신을 대표한다고 말하고 있어. 그들이 당신을 대표하는게 아니라면 그들한테 가서 말을 해야지. P.118

* 말을 해봤자 치러야 할 대가는 크고 돌아오는 것은 부실하다. 기 이한 질문들이 피해자에게 쏟아진다.*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겁니 까?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까? 이게 그 사람에게 무 슨 의미인지 모릅니까?" 케이트 맨은 특히 이 마지막 질문이 '힘퍼 시(himpathy)', 즉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ne)에게 자연스럽게 향하 는 과도한 공감(sympathy)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 시도 유색인종 남성에 대해서는 그리 선뜻 생기지 않는데, 이 부분은 뒤 에서 다시 얘기하겠다.) 학대당한 여자가 느끼는 공포보다 누명을 쓴 남자가 느끼는 공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그 래서 걸핏하면 여자 쪽이 거짓말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부터 하고 P.184

섹스에 대해서 거짓말하고 섹스를 하면서 고통받는 것은 우리 가 불완전한 세계에서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이다. 권력은 우리 가 자신의 욕망에 순응하도록 내몰고 우리는 그 욕망에 부응하지 못할 때 화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한다. 여성은 그들 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남성에게 굴욕감을 주지 않기 위 해 오르가슴을 연기한다. 남성이 불쾌해하는 것이 잠재적으로 더 위험하기 때문에 성적 쾌락을 가장하는 편이 낫다.

캐서린 앤젤이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에서 지적했듯이 여성 자신의 쾌락에 대한 생각이 여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여성이 섹스에서 (그리고 다른 영역에서도)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껄끄럽다. 우리는 여성이 자기 자신도 뚜렷이 알아볼 수 있는 욕망을 쉬이 형성 할 만한 조건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P.192

철학자들은 발화가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경우를 화행(5A, speech act)이라고 지칭한다. 1962년에 철학자 J. L. 오스틴0.1. Austin)은 뭔가를 말하는 것은 뭔가를 하는 것"임을 관찰하고 처음으로 화행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이론화했다.26 발화는 단순히 의미 있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입 밖으로 냄으로 써 실제로 뭔가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말은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상사가 "넌 해 고야!"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 사실에 의하여 그 말을 듣는 이가 직 장을 잃는 사태가 발생한다. 성관계를 하는 중에 상대가 "그만하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성관계에 대한 그들의 동의가 실질적으로 철회된 것이다. 따라서 이때 성행위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성폭행이 되고 일부 나라에서는 범죄로 간주된다. 말이 행위의 지속을 도 덕적 과오, 나아가 위법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듯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어떤 것을 바꿀 힘을 지니는 때가 제법 많다.P. 243

사회 규범은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지만 규범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우리가 접하는 정보에 민감하다. 담배에 대한 규제를 본받아 육류 제품이나 패스트패션 포장지에도 도덕적 경고문이 실 린다면 어떨까?

이 상품은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에서 한 달에 90달러를 받는 노동자가 만들었습니다. 원단은 토양 황폐화와 물 부족을 일으키는 면화 농업에서 생산된 면과 화석 연료에서 추출한 아크릴 혼방입니다. 이 제품은 세탁시 미세 플라스틱을 해양에 배출합니다.

나의 제안은 반쯤만 진지하다. 자본주의 정부가 이런 식으로 소비를 억제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타블로이드 신문의 헤드라인이 상상된다. 대중이 무슨 죄, 고기를 포기하라니' 하지만 경고문 에 제시된 정보는 사실이고, 그러한 조치가 지나친 훈계질이나 우 리의 의사 결정에 대한 부적절한 개입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소비 비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부재 자체가 이미 하나의 도덕적 입장이다. P.344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사례로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의류 재봉사들 은 그냥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유색인종 여성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사망하거나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은 그냥 운 나쁜 사람이 아니라 주로 남반구의 유색인종이다. 남반구 인구, 저임금 노동자, 환경이 평가절하되는 이유는 경제가 그 평가절하를 바 탕으로 삼아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 점이 이 시스템에는 자명하다.

세계의 공장들은 남반구에 있고 그곳의 인력은 주로 저임금 유색 인종 여성 노동자다. 상황이 이렇게 지속되는 한, 북반구의 페미니즘 운동과 인종차별반대 운동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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