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범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면서 전세제도 자체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본질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이는 집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안정적인 쉼터가 아닌 돈, 투자, 자본의 관점으로만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접근 자체가 부실한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어떤 해답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회주택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기 보다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전세라는 시스템 자체가 근원적인 문제 그리고 대출에 따른 부담을 누가 지고 있는가, 누가 수혜를 받고 있는가, 모순적인 행태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볼수 있었다.
나도 현재 집을 전세자금 대출을 통해서 얻었고 그 이유는 월세 보다 전세 대출 이자를 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내가 전세금 전체를 내 돈으로 지불해야했다면, 절대 이런 선택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 돈을 누군가에게 무이자로 담보로 맡기는 것에 대한 불안이면서 그 돈을 통해 내가 포기해야하는 투자기회(이자 포함)에 대한 비용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대출을 통해서 전세금을 마련하든 나의 돈으로 마련하든 이 돈을 확실히 돌려 받을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주도록 우리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는 이상 보호받아야할 세입자의 권리는 집주인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정해지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집주인이 돈을 돌려줄수 있음을 증빙하고 보증하는 방식이 되어야하지만 (혹은 세입자에게 그 집을 아예 주겠다라던가) 그렇게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집값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항상 느꼈던 점은 집값이 올라가도 야단법석이고 내려가도 야단법석이라는 점이다. 집값이 안정되도록 노력하면 사람들는 이를 싫어한다. 그 원인에서 전세제도의 허점이 드러나고 집을 거주의 공간이 아닌 인생의 모든 것을 투자한 자본으로만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정책대출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이익은 다주택자와 건설업자에게 갈 것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거주권을 보장받아야한 무주택자들에게 전가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느꼈던 점은 정말 집을 소유해야하는가? 우리가 집을 서유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 중 첫번째는 집값 상승에 편승하여 억대에 가까운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이고 두번째는 불안한 거주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집값이 무한대로 상승해야만 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그리고 그 상승을 견인하는 것이 정말 순수한 수요와 공급에 의한 것인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세입자라고 할지라도 주거 안정성을 충분히 보장받도록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의 저자는 사회주택을 그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사회주택에 대해서 근본적인 와닿음은 다소 부족했다. 좀 더 디테일하게 현재의 공공주택 정책을 어떻게 더 거시적 차원에서 확장할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주택문제와 정책에 대해 인식할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근본적인 우리나라의 문제 해결에 국토균형발전이 가장 절실하다는 점이 더 확인되는 중. 우리는 서울이라는 공화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가.
사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은 항상 잠복해 있었다.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해도 다음 날 0시부터 확 정일자의 대항력이 생기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임대 인이 전세 계약 직후 대출을 받아 그 집에 저당권이 설정되면 세입 자의 보증금이 후순위채권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임대인이 다음 세입자가 내는 돈을 받아서 주겠다며 새 임차인이 구해질 때까지 보증금 지급을 미루는 사례는 더 흔했다. 그러나 이는 일탈행위 또는 제도의 사각지대 정도로만 치부되었고,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르는 한'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다 p.20
만약 임대인이 전세를 끼고 갭투자로 집을 살 때는 어떨까? 최근의 깡통 전세는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100%도 넘는 경우가 많지 만, 대개 전세보증금은 집값의 50~80%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으 니 편의상 80%로 잡아보자. 그럼 5억 원짜리 집의 전세금이 4억 원 이라는 이야기니, 다주택자 입장에서는 자기 자본 1억 원만 있으면 된다. 여기서부터 실수요자(1주택자)보다 투자자가 유리해진다.
그뿐이 아니다. 1주택자는 빌린 돈 2억 원에 대해 본인이 이자 를 낸다. 그런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빌린 돈 4억 원은 무이자다.
임대인 즉, 다주택자는 실수요자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동원할 수 있 을 뿐만 아니라 이자도 내지 않는 것이다(이를 자신이 거주할 집이 이미 있는 경우의 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적으로 전세자금대출을 확대하면 어떤 효 과가 나타날까? 전세금 대출의 경우 대개 보증금의 80%까지 빌려 준다(신혼부부에게는 90%까지 빌려주기도 한다).
이때 전세금이 집값의 80% 정도고 그에 대해 80%를 대출해준다면, 결국 집값의 64%까 지 투자자들을 위한 자금을 제도적으로 공급해주는 셈이다. 거기 에 대한 이자는 임차인이 낸다. 임차인은 다주택자가 집을 살 돈을 160%에 대해서는 무이자로, 64%에 대해서는 본인이 이자를 내면서 빌려주는 것이다 p.22
대출금 외에도 세입자 자신의 돈까지 합친 대한민국의 전세자금 총액은 얼마일까?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세와 반전세를 합쳐 1056조 원이라고 한다.5 전세자금 대출액은 그중 약 17% 정 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는 세입자들의 부담을 그 정도 덜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그만큼 제도적으로 대한민국의 집값을 떠받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전세 제도의 가장 큰 비극은 세입자들도 '집값 상승 동맹'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증금을 무사히 받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는 전세 사기와 같은 일탈행위 때문이 아니라 전세의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에 따른 것이다. 시세가 하락해서 다음 세입자에게 받을 보증금이 더 적어지는 역전세나, 심지어 집 값이 전세보증금 밑으로 떨어진 깡통 전세 때문에 생기는 피해가 그 증거다.
전세의 본질은 집값이 계속해서 오르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세입자의 보증금 마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악 의적으로 세입자를 속이는 전세 사기가 아니더라도, 애초부터 전세 는 마치 '폰지사기'와 같이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집이 계속 지어지고 그 집값이 계속 오르던 시 전에 이를 깨닫지 못했다. P.28
하지만 생각해보자. 30년 동안 저축해도 살 수 없는 집값이니 대출 규제를 풀어달라고 한다. 그 말을 뒤집으면, 그렇게 대출받은 돈은 30년 동안 저축해도 갚을 수 없는 금액이라는 뜻이 된다. 결국 돈을 벌어서 갚지 못하니 집을 팔아서 부채를 갚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집값이 올라야 한다.
현재 기준으로 30년이 걸려도 못 사던 집을 이제 조카 세대에는 40년, 자식 세대에는 50년이 걸려도 못 사 게 되더라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은행 입장에서도 집값이 올라야 한다. 돈을 빌린 이가 성실하게 원리금을 갚아주면 상관없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담보물인 주택을 팔아 돈을 회수해야 하는데 집값이 물가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다면 곤란해진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모두가 집값 안정을 바라는 동시에 아무도 집값 안정을 바라지 않는다.
이 와중에 주택은 점점 더 다주택자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시 장이 과열되는 가격 상승기에 영끌과 패닉 바잉으로 집을 마련했던 이들은 금리가 오르면 하우스푸어가 되어 곡소리를 내게 된다. 대 출금을 갚기 힘들어진 이들이 집을 내놓기 시작해도 매수자는 나타 나지 않으니 집값은 내려간다. 이때 나온 집들은 누가 사들일까? 결 국 자금 여유나 담보력 있는 다주택자들이다. P.42
전세 위기 극복도 마찬가지다. 앞서 현재의 전세보증금을 차분하게 낮추고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 임대인들이 빚을 내야 한다고도 했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의 성격도 마찬가지로 장기 저리 공급자금융이다. 대출을 받은 임대인들이 그 이자를 일부 월세로 받고자 한다면, 이는 임차인에 게 부담이 된다. 그러니 임차인에게 전가될 부담을 줄이려면 임대료 규제도 필요하겠지만, 임대인을 위한 장기 저리 금융도 필요할 것이다. P.48
나라가 경제적으로 잘살게 될수록 자가소유율이 높아질 것이라 생 각하기 쉽다. 외국 사례들을 보면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깝다. 복지 국가일수록 사회주택의 비중이 높고, 자가소유율은 우리와 비슷하 거나 오히려 낮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는 '내 집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라기보다 '세입자도 마음 편히 사는 나라'라고 봐 야 할 것 같다. P.104
인구 증가가 아니라 정체 내지는 감소, 노동의 유연화에 따른 사회 양극화나, 여기에 대응하는 일자리 창 출과 지역 역량 강화와 같이 이 시대가 직면한 과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시대에 맞는 인구, 산업구조와 이에 따른 도시의 낙후 또는 쇠퇴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대응 전략 중 하나는 공급자에게 맞춰졌던 무게중심을 수요자와 사용자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주거 공간 은 다양한 산업 형태 종사자, 가족 구성, 사람 들을 위한 주거 서비 스, 커뮤니티 프로그램과 공간을 같이 제공하는 종합과 융합의 플 랫폼 역할을 해내야 한다. 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