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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라는 단어에 문제가 있다거나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고 해당하는 몫을 가져가는 것이 어떤 문제를 가질까에 대해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다만 그 능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증명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 능력을 갖추는 과정이 어쩌면 한국사회를 더 불행하게 맘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자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의 뒷 표지에 적힌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참지 못하는 한국인” 이라는 글귀 때문이었다. 불평등에 대해서는 꾸준히 관심을 가졌음에도 최근 10년간의 정치적 이슈와 더불어 늘 함께 화두되는 불공정에 대해서 사회적인 차원에서 두 주제를 연결시켜 생각해보지 못했다.

불평등은 어쩔수 없는 숙명이자 개인의 노력부재로 치부하며 쉽게 납득하는 모습과는 달리 불공정에는 불같이 달려들며 적극적 사회 구성원으로써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대답을 저자는 #능력주의 를 그 배경이자 핵심으로 삼는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그것에 문제가 있다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조차 능력의 부재로 보기도 하는 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는 모든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저자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당연시함으로써 줄평등을 재생산하고 이러 인해 민주주의가 악화된다고 지적한다. 매우 도발적인 주장이자 많은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발이 예상되는 발언이지만 책의 첫 말미에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버리는 확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책을 읽어가면서 바로 납득할수 있었다.

2021년 출판된 이 책은 최근의 한국사회의 사회적 이슈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생각하지 못한 관점에서 그 이슈들이 특히 불공정과 관련한 분노의 기저에 깔린 능력주의를 드러낸다. 특히 우리가 말하는 그 능력이라는 것이 정말 외부의 특별한 개입없이 개인의 온전한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갖게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페이지를 찍은 이유도 내가 이 책의 대다수의 이야기들에 깊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단순히 불공정 이슈를 넘어서 시험으로 모든 자격을 부여하고 능력을 측정하는 사회 시스템과 그 틀에 맞춰진 사고를 할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분노는 그 분노를 뿜어내는 주체가 대체적으로는 사회의 기득권 계층이나 권력을 가진 집단이기 보다는 늘 상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정말 본인들이 느끼는 문제의식의 본질에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으며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닌 원인이 되는 시스템과 제도를 의도와 달리 유지하는데 기여한다는 사실이다.

사회가 늘 긍정적이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대중이라는 집단적 사고와 나도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특권층이 되겠다는 열망이 권력을 가진 이들의 지지와 결합되어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능력이라는 그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치는 기술과 그 결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세뇌된 능력주의와 학벌로 이어지는 발언권에 대한 권한 부여로 이어진다.

개인의 재능이 발현되고 그 재능으로 삶과 사회에 함께 기여하는 삶이 없어지고 소수의 재능을 뒷받침해줄 경제적 여력과 시험치는 기술로 모든 이들의 재능을 평가하고 말살하는 시스템이 불행하고 우울한 자살율 1위 국가를 만드는게 아닐까.

학교에서부터는 우리는 늘 시험과 그 결과 스스로를 어떤 사람인가 규정하는데 익숙해져왔고 학벌에 따른 계급화된 상위대학에 진학하지 못할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개인적으로 늘 느끼는 불안감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발언을 할수 있는 기회와 권한 조차 학벌에 따라 정당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시험주의 를 능력주의 최종형태이자 가장 전형적인 능력주의라고 말하는 이 책은 이 능력주의를 철학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추상적 주장이 아닌 한국의 가장 커다란 현실적 단면을 사례로 든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만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기도 하지만 모든 내용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을 필요는 없다)

 

불공정은 어쩌면 불평등에 분노한 대중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파간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우리는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받을수 있다는 거짓에 녹아든듯 하다. 능력주의와 시험주의로 첨철된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이들이 사회적 생산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가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적 역할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회적 중범죄에 대해서까지도 면제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혹여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대로 이미 한국사회가 매우 심각한 수준의 구고적 문제에 직면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능력주의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물론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리고 나의 행동과 발언들의 배경에 그 능력주의가 바탕이 되었음을 확인할수 있었다. 나는 내 스스로 대부분의 것을 일궈냈다고 믿으며 자부심을 가져왔지만 그것은 내가 노력으로 얻지 않은 것들(당연시해왔던)의 발판으로 일궈진 곳이었다. 실패하면 안된다는 사실과 최소한 이렇게는 살아야 하지 않나하는 압박감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심해지고 오히려 어렸을때 더 선명했던 나의 열정들이 사라지는 듯 하다.

정규직에 대한 한국인들의 간절함은 고용안정성에 기인하겠지만, 노동유연성이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의 분절화와 그룹 나누기는 기본적으로 고용주에 대한 노동자들의 연대를 저지하고 그들끼리의 갈등을 재생산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해외의 비정규직 사례를 언급하며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비정규직들이 고용 안정성을 포기한 값으로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지만 우리의 분노는 때론 바보같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이른바 PC라고 불리는 모든 표현에서의 혐오와 차별을 철폐해해야 한다는 사회적 지향성은 종종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또다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그 올바름은 어디까지로 한정지을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런 논란이 생길만한 부분은 충분히 다양한 의견의 형성과정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가장 기본적인 것인 혐오를 할 자유 Hate speech 그 자체가 권리로 인정받을수는 없다는 점이다.

말에는 힘이 있고 그 힘을 사용한 것에 대한 책임이 주어진다. 악플에 대한 처벌과 공동의 이익과 무관한 가십성 거짓 정보 공유에 대한 처벌 또한 이에 기초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공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은 비난과 비판을 구분할 능력을 키우는 것이고, 공감의 지능을 높여 차이를 발견하기 보다는 공동과 공통의 분모를 찾아 여러 형태의 해결책을 제시할수 있는 교육이어야 할것이다.

나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나도 특권층이 되기 위한 욕망에 이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발언할 힘을 가지려면 특권층이 될수 밖에 없다고 다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 등이다.

정말 만약에 내가 특권층이라 불리는 집단에 속하게 될때 나는 과연 얼만큼 불평등에 분노하게 될까 상상에 빠져본다. 불공정은 그 자체로 불평등하기 때문에 생기는 아주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고, 그 공정함이 모두에게 주어지기 위해서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

불평등을 해소해야하는 이유를 홍보를 전략적으로 인식시켜야 할 때 혹은 국제개발협력과 같은 재분배적인 국제적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할때, 가장 중요한 지점은 사실 사회적 약자들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초점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들이 겪게 될 위험을 더욱 드러내는것이 중요한다. 국내의 불평등이든 국가간 불평등이든, 불평등은 그 자체로 불안정한 사회를 만들어 낸다. 평범한 일상이 지속가능하려면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재분배의 축소와 불평등의 심화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재앙의 수순이다.

빌게이츠와 워렌버핏 같은 대부호들이 기부에 대해 높은 소득에 대한 세금을 받아들이는 이유또한 단순히 그들이 선하거나 관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불평등이 자신들의 삶과 자산에 위협이 될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재분배를 위한 세금과 기부가 오히려 더 높은 투자수익율을 가져올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저자의 방대한 자료조사 시간와 그 내용을 배열하는 학문적 깊이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불평등에 대해서 이렇게 다양한 측면에서 추상적 주장이 아닌 근거와 인용을 하면서 주장을 펼칠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올까싶을 정도로!

부자에 대한 과세 인상 논란은 한두번이 아니지만 자본주의와 시장경쟁 논리로 점철된 현재의 미국의 과거 과세 사례가 매우 놀라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과세 인하과정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미국은 절대 롤모델 국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미국은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내는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으로 만들어 진 선진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 내용에 대한 한국에서의 사례는 너무나 확연히 그 대표적인 인물과 그들을 옹호하는 집단(협회 등)이 너무 투명하게 드러나므로 특별한 언급을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소득에 따른 환경기후 이슈의 관련성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가장 발전한 나라 중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 우리가 미국을 떠올리며 만들어 낸 한국의 현실일까. 물론 여전히 난 미국과 비교해 한국이 더 나은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역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조금은 두려워지는 최근의 현실이다.

불평등에 대한 묵인과 용인은 성공과 실패를 모두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사회적 배경에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온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고 실패의 사례를 살펴보면 온전히 개인의 잘못에 기인하지도 않는다.

낮은 자기표현은 우리가 받는 교육과정에 얼마나 공동의 해결을 위한 논리적 주장을 펼칠수 있는 기회와 배움이 있었는가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 주장과 표현에 혐오와 우위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공격적 표현과 본질 흐리기에 매몰된 말하기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해서 크게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사회가 현재의 수준까지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감사함이 사회의 발전된 민주주의로 이어지기 보다는 정치 대표성을 선발하는 과정에 대한 민주주의로만 한정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이 한국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하지 못하고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머무르게 된 원인일 것이다. 힘들게 일궈낸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켜나가야 할 의무가 있음을 느낀다.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내용은 내가 지난 책에서 읽은 보편적 기본서비스에 대한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보였다. 개인적으로 이 정책적 내용을 한국사회에 적용시켜 연구해보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벌주의에 반대하는 말도 학벌 좋은 사람이 해야 설득력이 있다고 느끼는 심성,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힘을 기른 뒤에 행동하라는 조언 = 사람을 차별하는 능력주의자

격차와 특권을 당연시하는 제도와 문화

지난번 책에 이어서 이번 책까지 내가 만족했던 책들의 대부분은 수많은 국내외 자료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들이다. 한국의 능력주의, 이 책 또한 자료출처만 적어둔 페이지만 35페이지가 넘는 정도.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여러 책들을 읽어봤지만 이 책만큼 정확하고 명쾌하게 우리 사회와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배경을 지적한 글을 본적이 없다. 다양한 측면에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매우 추천하는 책이며 다만 아쉬운 것은 여전히 그 능력주의를 대체할만한 선발방법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그 선발의 결과 차별과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선발과정과 방법에 대한 논의는 단순한 시험주의에서 벗어난 논의를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사회와 한국인에 대해 궁금하면 필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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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몇년간 늘상 들어왔던 정치적 소재였다. 자본주의 시대의 정점 속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절대적 규모의 부의 창출을 이뤘고 그 부는 기업의 독점적 자본으로 남겨졌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경제적 소득을 위한 안정적 노동기회 오히려 줄어들었고 일자리는 부족하다 외치며 실업률이 최고치라는 기사들과 무색하게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많은 최첨단 기술들의 진보와 성과를 외친다.

인구가 줄어들어서 문제라고 하면서도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책임은 여전히 개인에게 남겨지고 아이를 낳음으로써 한 개인이 포기해야할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불편해한다. 일자리도 없으면서 아이는 왜 낳으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고, 그러면서도 끝없이 자본의 규모에 따라 커져가는 경제적 불평등과 지역격차에 대한 언급은 여전히 나중의 문제로 치부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기본적 소득이라는 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현금을 단순 지급하는 것의 실현가능성과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큰 효과성을 발휘할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코로나19 지원금과 같이 보편적 현금성 지원이 나를 포함한 국민들의 잠깐의 녹으면 사리지는 사탕의 달콤한 대신 어떤 그 이상을 남겨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었다.

기본소득이 아닌 보편적 기본서비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내가 가진 의문들에 대해서 알아볼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특히 대학원에서 개발정책학을 전공하는 있는 나에게 개발이라는 것이 개도국을 위한 것만이 아님을 확실시 해주었으며, 선진국 반열 속에서 더 심화하는 불평등사회를 지속가능하게 개발할 방안들에 대해서도 고민할 기회를 주었다.

개인적으로 가능하다면 이미 졸업 페이퍼를 위해 제출한 주제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지속가능개발에 대해서 이야기할수 있는 페이퍼도 작성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책 도입부에 언급된 제법 익숙한 제목의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이름의 브룬틀란 보고서에 대해서 원문내용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서비스로서의 보편적 기본서비스는 기본소득과 같은 현금성 지원에서 늘 비판받는 경제적 편익분석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이 가지고 있는 그 단순성이

가지는 부작용들에 대해서도 알수 있었는데, 난 이런 현금성 지원들이 적어도 한국과 같은 선진국 반열의 국가에서는 빈곤층을 제외한 긴급한 계층을 제외하고서는 정치적 돈 뿌리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가 우리는 이미 의료서비스, 공교육, 치안 등과 같은 생활 분야에서 보편적 기본서비스를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실현불가능한 정책이 아님을 확인할수 있다.

 

이 책에서는 보편적 기본서비스의 확대하여 그 범주안에 들어와야 할 분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 내용들은 내가 앞서 이 블로그 글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할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느꼈다.

KDI국제정책대학원을 다니면서 나의 시각이 좀 더 확장되었다고 느낀 점이 바로 정책에 대한 경제적 편익분석을 고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그럴싸하고 착하고 좋은 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자본주의 시대 속에서의 현실에 끼칠 긍정적 결과outcome을 증명할수 있어야하는 것.

인구감소로 인한 세수확보가 어려워진다는 현실속에서 이러한 보편적 정책들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에 쉽게 매몰되고 논의할 가치 혹은 그 시기마저 적합하지 않다는 물타기에 쉽게 휩쓸린다.

그러나 그것은 시한폭탄을 수건돌리기 하듯이 언제가 터질 문제들을 눈 가리고 아웅하는것과 다를바 없다. 솔직히 얼마나 현실정치의 세계에서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을 심도깊게 고민하고 토론하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그 게으름에 놀라게 될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그리고 그 빠른만큼의 부의 증가에만 중독되어 나무조각이 하나씩 빠져가는 위태로운 젠가게임이 되어가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회같아.

복지에 대해서 살짝 얘기를 꺼내어도 나라의 빚이 어쩌니 부채가 어쩌니 나라가 망한다며 호들갑이지만, 정경유착의 부패에는 기업 죽이기라며 쉽게 죄를 사면하고 부의 분배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도 기업 하나의 최고실적이 나라 전체의 국민 전체의 부의 창출인듯 떠든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는 기본소득이 가진 현금성 지원의 모든 제약들을 해결할 실마리인 보편적 기본서비스에 대해서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보편적 기본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출하는 일회성 혹은 소모성 정책을 조절하며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이용한 법인세 그리고 사치세에 대한 것으로 일단 시작될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은 마치 잘 정리되어 읽기 쉽고 편한 논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제 사례와 실증적 근거들로 가득하다. 이 책을 반박하는 또 다른 내용의 글이 있다면 그 또한 읽어보고싶을 정도다.

복지정책은 부정적인 관점에 편익없이 휘발될수 있고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수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현실정치에서 국민들에게 시혜적인 태도로 내려지는 단기 현금성 지원들이다. 특히 가난한 이들 중산층인 이들 부자인 이들을 모두 불편하게 만드는 선별적 현금뿌리기는 더욱 그렇다.

보편적 기본서비스의 본격적 확대는 그러한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는 단계의 정책이며 자본주의 시대 속에서 양질의 경제성장을 지속할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의 GDP 대비 부채는 현전히 낮은 편이며 그 중에서 공공서비스에 대한 지출은 더욱 낮다. 차마 복지효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조차도 어불성설이라 느껴지는 규모다. 이 정책을 당장 시작하자는 주장 대신 이러한 정책들을 공론의 장에서 가장 핵심이 될 사안으로 우선 만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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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삶과 죽음에 대한 마지막 인생 수업이 시대의 대표지성 이어령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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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고 있었거나, 그의 이전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 건 전혀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대학원 생활에 잠시 눈을 돌리고자 오랜만에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기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보았고, 이어령이라는 이름이 눈에 익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한 지인이, 지금은 고인이 된 이어령 작가에 대한 추모글을 올린 것이 떠올랐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없으면서도, 내 주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나에게 각인시킨 것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이어령 작가의 제자라고 하는 김지수 저자가 그를 인터뷰하며 남긴 기록들이다. 김지수 저자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로 유명하다고 했다. 제자와 스승이라는 관계와 죽음을 앞둔 스승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채워진 책은 담담히 이어령 작가의 삶과 철학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인터뷰어인 김지수 저자가 인터뷰를 이끌어 나가며 질문이 아닌 대화를 한다는 점에서 그 형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 이어령, 넥스트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 이어령, 넥스트 생은 선물, 죽음은 탄생의 그 자리 변함 없어 진짜 죽음은 슬픔 저 너머에, 이어령식 작별인사 하늘에 별처럼, 자기 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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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동기가 이 책을 추천하면서 살짝 걱정하는 뜻으로, 기독교적인 가치관들이 드러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써 그 책 자체가 포교의 목적이 느껴진다면 당연히 거부감을 느꼈을터이다. 하지만 이어령 작가의 기독교적인 신앙은 본인 개인의 가치관이자 하나의 영역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또한 그 내용 자체가 주를 이루고 있지도 않다. 그의 삶과 가치에서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진 영향을 읊을뿐. 이 점이 오히려 그의 말들이 좀 더 몽글몽글하게 느껴지게 했다.

암 투병을 하고 있으며 시한부의 삶을 선택한 이어령 작가는, 죽음에 저항하며 치료를 받으려 하기 보다는 그 죽음에 몸을 맡기고 항암제가 가져다 줄 기적의 치료보다 담담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라고 느껴진 대목이었다. 철부지 같은 꿈이었겠지만, 아니, 아마 지금도 원하고 있을지 모르는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죽음은 침대에서 자연스레 잠들며 떠나는 것이었다. 죽음을 미리 아는 것이 너무 두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었다. 준비된 죽음이야말로 가장 온전한 죽음이겠구나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본인에게도 남은 이들에게도 황망하고 서글프다. 암이라는 질병에 걸린 것이, 그리고 그것이 치료될수 없다는 사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어쩌면은 행운적인 죽음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어령 작가처럼 자신의 삶과 생각을 명확히 가지고 그것을 남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이라면 죽음이 어쩌면 그렇게 허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상한 부러움을 느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겠다는 선언이구나를 깨닫게 했다. 어렸을 때 부터 줄곧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없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던 난, 그 답을 찾아가는게 삶이다라는 자전적 결론을 내렸다. 삶의 이유가 아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핵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어령 작가의 삶과 나의 삶은 다르겠지만, 단 하나 그의 삶을 보아 내가 원하는바가 있다면, 그처럼 끊임없이 사유하고 호기심을 잃지 않은체 삶을 이어나고 싶다는 점이다. 대학원생이자 취업준비생인 나에게 당장의 불안은, 시험성적과 장학금 그리고 취업이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이 앞에서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과정일뿐일 것이다. 눈을 감기전 나는 그때, 성적을 잘 받지 못해 장학금을 놓친 것을 후회할까? 아니면 성공적인 취업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까? 죽음을 떠올리며 사는 삶이 그 반대말인 살아감을 더 선명히 해준다.

나의 죽음 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할 때 나의 감정을 그려보면 그 대상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도 떠오른다. 그렇게 죽음은 사라지는 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이고 나아갈 길의 나침반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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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해지 신청하고 나서

만료 전 마지막으로 본 시리즈

내가 본 넷플릭스 시리증 중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면서

이집트, 예루살렘,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이스라엘 정보국, 팔레스타인 하마스

IS 등의 여러 이해집단이 섞여 있다

#걸프롬오슬로 하는 제목 처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이스라엘을

거쳐 이집트로 간 한 소녀가

이스라엘 친구들과 함께

IS에게 납치를 당하면서

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과

탈출과정이 주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 그 자체보다도

그 과정에서 서로 얽히고 섥힌

이해집단들의 관계와 입장이

전개를 더 흥미롭게 하는데

특히 예루살렘에서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이 시리즈 속에서라도 생생하게

표현됐다는 점,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한 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통행 등에 관한

장면들이 인상깊었다

나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을

고등학생 때부터 가져왔던 사람이라

그 부분들이 도드라지게 느껴졌던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시리즈가

또 다시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데

일조하지는 않는지 견지하면서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시청했다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배경을

제외한다면 딸을 구출하기 위한

엄마와 아빠, 즉 부모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거기에 더해 이스라엘 정보국장을

납치된 딸의 엄마와의 인연을

소재로 집어넣어 좀 더 극적인

캐릭터 연출이 가능했다

이 시리즈에서 오슬로협정에

관한 언급에 자주 되길래 이 부분을

미리 알고 보면 더 도움이 될듯하다

IS는 이슬람에서

가르치는 종교적 교리를

전혀 따르지 않는 이들이며

이들을 무슬림이라고 보는 시각은

테러집단인 그들의 주장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사실

이 시리즈에서 표현되는

것이 무슬림이 아니라

스스로 무슬림이라 주장하는

테러조직들의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하나의 창작물로서

인질극과 협박과정이

잔인하고 생생하게 그려지면서도

그 집단 내에서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성격의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시각을 넓히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납치된 딸을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를 돕는 조력자

역할인 예루살렘 내의 의사인 이

캐릭터의 눈빛연기가 정말 압권이었어서

연기로만 생각하면 이 분이 제일 좋았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없었음 ㅎㅎㅎㅎㅎ

맨 오른쪽의 인물이

IS 조직에 가담한 팔레스타인

청년인데 이 청년의 캐릭터 설정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얘기하면 스포될 것 같아서 ㅎ

테러조직은

인질을 풀어주는 조건을

제시하며 노르웨이와

테러혐의 용의자와

이스라엘의 조직원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면서

납치된 딸의 아빠는 노르웨이에서

변호인으로써 그 용의자를

재판에서 빼내주려고 하는 등의

여러 배경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시리즈다

이 밖에도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협력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이스라엘 정보국장

그리고 유대인이면서 유대교를

따르지 않는 납치된 자식들을

죽은 사람 취급하던 유대교 종교인인

아빠의 모습 등이

이 시리즈가 인질극과 구출작전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중동정세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등의 관계, 예루살렘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매우 추천!

#넷플릭스추천 #걸프롬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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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다시 결제하면서

보고싶었던 시리즈 중 하나인 #고요의바다

예고편도 보지 않고 어떤 내용인지도

전혀 모른채 이틀동안 몰아보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일까?

하며 대부분 넷플리스에서 개봉된

승리호를 떠올릴수 있겠지만 전혀 다르다

우주를 배경으로 했다기 보다는

한국이 지구에서 전 세계적으로 겪고있는

절대적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한 달 기지에서의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주된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우주의 무중력이나

신비로움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다소 지루하고 비슷한 배경(달 기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다이내믹이 부족하다고

볼수 있을 것 같다 (아쉬운 평가가 이해됨)

하지만 이것이 미래에 일어날

물 부족과 물을 계급별로 배급 받아야하는

상황이 현실로 느껴진다면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한 경우까지

용인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좀 더 깊이 있게 고요의 바다를 볼수 있다

캐릭터들의 전체적인 톤이나

대사내용에서 무거운 분위기를

걷히게 해줄 작은 유머나 웃음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드라마가

다소 쳐진다는 느낌을 받을수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지겹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매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사건과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몰입도를

높이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클리셰한

장면들이 보이면서 진지한 연기를 하는

배우들 속에서 약간의 유치함이 느껴진다 ㅎ

이게 연기를 못한다거나 스토리가

빈약해서라기보다는 다소 장황한 캐릭터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 부여와 해외 영화나

시리즈물에서 본것 같은 감정변화들이 그렇다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이어서 보고싶지만

그 후로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수 있을지

어디서 본것 같은 느낌을 줄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생긴다 ㅋㅋㅋㅋㅋㅋ큐

그리고 어떤 캐릭터들의 연기는

좀 오글거릴 정도로 과장되거나

진지한 모습을 변화없이 보이는데

그게 왠지 모르게 좀 오글 ㅎ

#넷플고요의바다 #넷플리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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