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동참하며 올바르고 투명하게 경영하는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개념
ESG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자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적 책임이다.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정량적 지표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ESG 활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계량화·정량화된다. 이것이 CSR과 ESG의 결정적 차이다.
넷제로의 궁극적 목표는 배출량의 제로(0)를 지향한다. 더하기 빼기를 통해 결과치로 제로를 만드는 탄소중립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진정한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메탄, 수소불화탄소와 과불화탄소, 육불화항, 이산화질소 등 전반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해야 한다.
오너 및 CEO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사회가 CEO 추천 및 선임, 경영 승계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업무 전반을 관리·감독해야 한다. 미국, 독일 등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CEO 등의 핵심 경영진을 선임할 직접적 권한이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에 있고, 경영 승계 역시 지배주주 등이 아니라 이사회 또는 이사회 내 위원회의 책임 사항으로 두고 있다.
앞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은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벌었느냐’가 될 것이다.
ESG는 기부나 자선 활동이 아니다. 단순한 마케팅이나 기업 홍보, 혹은 직원 복지에서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비전 하에 기업 가치를 높이는 투자임을 인식하고 전략적 방향에 맞게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가시화되고 측정 가능한 ESG 추구로 자본 조달비용은 감소하고 실적 및 기업 이미지, 브랜드 가치가 개선되면서 기업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경영이 특정 조직만의 미션이 아닌 기업 전체의 과제가 되기 위해서는 전담부서 설치보다 먼저 명확한 비전과 목표가 마련되고 공유돼야 할 것이다(핵심은 ESG 조직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 경영의 중심이 되어 경영 활동 전반에서 ESG가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ESG 개념 이전에 CSR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미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기업의 브랜드가치와 소비자에 대한 선호도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역할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부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나에게 해당 개념은 나도 기업에서 일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업무에 대한 인력수요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직무 전문성을 따로 요구하는 경우도 없었다. 내가 그때까지 찾아보았던 바로는 일단 회사에 입사를 하고 나서 연차가 쌓은 후 관련 부서로 이동하는 경우였던 것 같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계속 해왔던 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서도 나는 하나의 국가의 공적원조가 단순히 선한 일 그리고 인류를 위한 일로 치부되기 보다는, 상생의 협력이자 세금을 들여 원조를 제공하는 그 나라에게도 이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이익이라는 것이 경제적 이익으로 치환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핵심은 그 일이 소프트파워의 전략이든 무엇이든 긍정적 상호작용을 통해 양측의 결과물을 산출해내야 한다는 점이었고, 그것이 지속가능한발전을 위한 공적원조의 지속적인 국민들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점에서 ESG개념이 대두되고 그것이 예전에 기업의 작은 이익을 사회에 공헌하며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또다른 관심을 가지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개미 투자자로써 나또한 ESG가 장기적 가치투자를 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읽기 시작했고 책을 읽으면서 이 개념이 하나의 용어가 아니 섹터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러면서 커리어의 전환, 전공과 경험의 전환을 희망하는 나에게 나의 지향과 경험을 조금이라고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서의 대학원 진학에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 ESG개념과 사례, 평가방식, 기업사례, 기술 등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읽어봤을 때, 솔직히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아직 국제적 기준에 의한 표준평가방식이나 방식이 정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내가 이러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췄을 때 더 많은 기회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관련 전공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원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것과 동시에 대학원의 엄청난 학비, 특히나 경영전문대학원의 높은 학비에 충격을 받았다.....ㅎ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대학원 밖에 없지만 실제 앞으로 나의 커리어를 생각해봤을 때 ESG라는 개념은 여러방면에서 유용할 것이다. 특히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기를 원하는 나에게는 소액이지만 이 가치를 준수하는 기업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내가 담은 기업들은 대부분 이에 준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실제로 높은 배당금과 수익율에 대한 유혹으로 ESG라는 가치에 준하지 않는 기업을 사고싶다는 유혹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방향성을 확인했다.
여전히 나의 커리어에 대한 의문은 현재진행형이고 명확히 정해지거나 누군가 가본 사람이 없는 길이어서 더 흐릿하고 대학원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하는 고민도 들지만 나의 관심의 저변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쁘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것을 알게 될 수록 더욱 고민이 많아지니 마음이 더 무겁기도 한 것이 사실 ㅠㅠㅠㅠ 대학원 학비는 왜 이렇게 비싼거지 (절레 절레) 어렵다 어려워, 누군가 정답을 알려줘....(결론이 이상하게 끝나네 ㅋㅋㅋㅋㅋㅋㅋ) 끝!
모든 땅을 옥수수와 콩, 소를 키우기 위해 사용한다는 말은 곧 사람을 위한 먹거리를 재배할 땅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보다 가축을 위한 사료를 먼저 재배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육류산업 문제의 핵심이다. 급속히 늘어나는 가축에게 제공할 사료를 재배할 땅도 부족하지만 2050년이면 95억 명을 넘어설 세계 인구가 먹을 식량을 키울 땅도 충분치 않다.
노동이야말로 기업이 쥐락펴락할 수 있는 요소다. 그러니 이 고정비용을 가혹하게 쥐어짜는 것이다.
정육기업들이 성장할수록 그들의 손에는 엄청난 권력이 집중된다. 그리고 이는 세계 곳곳의 시골 공동체나 농업에 전례 없는, 끔찍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축산 폐기물이 일으키는 거대한 문제와 엄청난 영향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정부는 폐기물 처리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다. 몇몇 중국 기업은 폐쇄형 혐기성분해장치를 설치하는 등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항생제와 호르몬 외에 구리, 비소, 아연, 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가득한 유해 폐수 수십억 톤을 처리할 묘약은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산업화된 육류산업 덕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고기를 자주 먹으며 미식의 즐거움과 영양 혜택을 누리고 있다. 게다가 육류산업은 다양한 일자리도 제공한다. 곡물과 동물을 키우는 농부와 목축업자들,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연구원과 도축이나 생산 과정에서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 수의학자나 유전학자를 비롯해 육류 공급사슬 어디에선가 근무하는 모든 이들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말이다. 주요 육류 생산국의 수출은 국가 재정의 원천이며 국내총생산을 증가시키는 주요 요소다. 겉으로만 보면 육류산업은 사랑스러운 점이 너무나 많다.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도 고기를 절대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거나 결심해본적은 없다. 다만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기후변화, 동물복지, 건강 등 다양한 차원에서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현실사회에서 육식산업에 대해 알아갈수록 내 마음은 불편해져갔고 그 불편함은 나의 양심이자 스스로에 대한 모순이었다.
#육식의딜레마라는 이름의 이 책에서는 기존에 내가 보았던 다큐멘터리 혹은 책들과 달리#채식주의를 장려하거나#육식주의를 비난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핵심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비행위와 가 제품에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에 관한 ‘앎’이다.
이것은 비단 채식주의에 대한 트렌드적인 지향과는 별개로 소비자들의 알 권리에서 출발한다. 내가 알고 소비하는 것과 모르고 소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고 이것은 하나의 권리로 인식된다.
소, 돼지, 닭 등의 동물들이 우리 식탁 위 하나의 ‘고기’에 불과하게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육식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과포포화된 고기에 대한 수요와 그에 반응하는 육식산업과 사육시설과 방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 스스로가 그들의 터전을 파괴하는 행위, 그리고 현재 수많은 기사들에서 확인 할수 있는 자연재해의 원인이 육식소비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와 같은 책들과 영상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내가 계속해서 이와 관련된 내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성이자, 그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쉽게 익숙함에 이끌리는 나를 자제하기 위해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그 행위에 대한 개인의 몫이다. 그를 빌미로 누군가를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마음의 먹소리에 귀를 기울일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