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기록>
뇌의 크기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는 동안, 한편에서는 남성의 우월성을 지지하는 과학적 근거를 찾는 노력이 새로운 분야로 옮겨갔다.
뇌의 여러 영역이 저마다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19세기에 발견되자, 과학자들은 여성과 남성의 이런 뇌 영역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남성의 지적 우월성을 옹호하는 해부학적 근거를 찾아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지도 않다.
21세기에도 남성과 여성 뇌의 ‘본질적인’ 차이를 찾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성별 차이에 대한 케케묵고 근거 없는 믿음을 너무 자주 떠올리게 한다.
많은 남성과 여성의 두뇌에서 이 영역의 크기가 같고, 더 나아가 일부 여성은 더 크고 일부 남성은 더 작은 양상을 보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 두뇌 구조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성별 차이에 적용되는 진실이다. 평균적 차이는 작고, 성별 간 겹치는 부분은 상당히 크
두뇌 특징을 ‘남자’와 ‘여자’의 것이라고 하는 대신에, ‘밀도가 높고 낮은’, ‘길고 짧은’, ‘크고 작은’과 같이 정보를 전달하는 용어를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성별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성별은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두뇌 특징이나 뇌 전체가 하나의 성별로 분류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뇌 활성화 패턴이 정말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종류로 나뉜다면, 뇌 스캔의 수가 많은 연구가 표본이 적은 연구보다 성별 차이를 더 많이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뇌 활성화 패턴을 비교한 179개의 연구를 분석하여 2018년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그런 관계성을 찾을 수 없었다.7
즉,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할 때조차도,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스스로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기대가 우리의 행동을 ‘젠더화’(‘gender’를 동사로 사용하여 사회ㆍ문화적 성 규범에 부합하게 만든다는 의미 - 옮긴이)한다.
남자들은 가부장적 서열에서 권력을 쥔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종종 가혹한 처지에 놓인다. 전쟁에서 떼 지어 죽는 것도, 업무 관련 사고에서 부상을 당하는 것도, 때로는 마음속으로 예술 분야처럼 수입이 불확실한 직종을 갈망하면서 할 수 없이 가계 부양자의 책임을 맡는 것도 대부분 남자다.
이 모든 것이 지배 집단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집단에 속하는 것은 권력의 소유와 행사뿐 아니라, 권력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도우며, 지배적 위치가 주는 스트레스를 감내함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성별 차이가 보이면 그것이 ‘본성’이라고 근거 없이 추정한다. 다시 말해서, 이 차이들을 ‘타고난’ 또는 사전에 정해진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암시한다.
일부 트랜스젠더 사람들이 찾는 호르몬 시술이나 외과적 수술은 심리적 젠더 경험에 맞추어 자신의 외모를 바꾸고 싶은 욕구보다는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려는 목적으로 종종 이루어진다는 미주리웨스턴주립대학교 케이 시블러Kay Siebler의 주장을 뒷받침한다.7
젠더 시스템과의 싸움에는 어려움이 가득한 것이 사실이다. 친구들과의 대화나 직장에서 젠더 표현의 사용을 지적하면 ‘성가신 페미니스트’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수 있고, 여자라면 ‘남성 혐오주의자’라는 말까지 따라올 수 있다.
성차별적 농담에 불쾌함을 표시하면 당신에게는 유머가 부족하다는 딱지가 붙을 뿐 아니라 언어적ㆍ신체적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이 자신과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숨겨진 편견을 깨닫는 걸 기뻐한다
출처- 젠더 모자이크 : 뇌는 남녀로 나눌 수 없다 | 다프나 조엘,루바 비칸스키 공저/김혜림
<우리는 세상이 정해준 ‘젠더(gender)’ 두 개의 ‘성(sex)’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논리 중 하나는 개인을 어떤 특정집단에 집어넣고 그 프레임 속에서 개인이 가진 수많은 기질은 무시한체 평가하고 일반화하여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이다.
세상이 정해 놓은 수많은 프레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모든 이가 느끼는 것이 바로 ‘성별’에 따른 것일테다. 성별이라는 것은 단순히 염색체와 성기의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인데도, 우리는 그 성별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수많은 백그라운드를 가진다. 그리고 이것은 곧 차별로 이어진다.
특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sex)은 사회적으로 규정화된(규범화) 젠더(gender)로 인해 차별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차별은 사회적 제도와 구조적 문제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 차별을 정당화하는 과학적 분석에 기인하기도 한다. 물론 이 과학적 분석이라는 것은 소수의 사례의 연구를 통한 단순결론도출에 불과하다.
이렇듯이 #젠더모자이크 라는 책은 두뇌연구가 지금까지 고착화한 성차별과 개인을 지우고 기득권사회가 만들어낸 젠더규범을 종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음을 알게 한다.
나또한 남자 뇌 혹은 여자 뇌에 대한 이분법적인 구분과 그에 따른 선천적 특징으로 규정짓는 뇌 연구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이를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을 읽어보지 못했던 찰나 이 책을 읽게 되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저자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이 무시되어야 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 성별이라는 것이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고 개인을 결정지을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비교하는 혹은 지금의 MBTI처럼 정해진 결과값에 끼워맞춰지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남자다움 여자다움 여성스러움 남성스러움은 일반화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사회가 일방적으로 묶어둔 수많은 유형 중 하나일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타의적으로 혹은 자의적으로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차별을 낳는다. 특히 난 트랜스젠더에 관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이 스스로의 외형을 바꾸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수술을 하는 이유는 본인 개인이 가지는 여러 기질을 사회가 일방적으로 판단하며 스스로를 한쪽의 성별에 걸맞는 외형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것. 그리고 이는 본인이 살아오면 학습화된 사회적 성별의 구분에 의한 인정욕구라는 것이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 서적이 아니다. 하지만 그 아떤 책보다도 성차별적 문제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이며 이는 비단 여성이 아니 남성들에게도 필요한 내용이다.
남성이라서 더 많은 것을 책임지고 경제적 능력을 갖춰야 하고 신체적 노동력이 주가 되는 일을 도맡고 여성을 남성이기 때문에 배려해야 하며 희생해야 한다는 이런 믿음과 현실 또한 기득권사회가 규정한 성차별적 허상이라는 점을 말이다
“나는 여성과 남성이 없는 미래를 꿈꾼다. 오직 여성의, 남성의, 또는 간성의 성기를 가진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이 미래에는 성별이란 신장, 체중, 나이, 또는 눈동자 색깔처럼 우리의 신체적 특징 중 하나를 묘사하는 용어일 뿐이며, 인간을 집단으로 나누거나 다르게 대우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남긴 위에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집단이아닌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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