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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나서

방학동안은 여유롭게 책을 오랜만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서관

대여기계에서 가장 최근에 반납된

책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을 골랐다

#읽는인간 이라는 제목으로

#리터러시 에 관한 내용으로 보였는데

대학원 지원서를 작성했을 당시에도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문해력(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이

부재함을 지적한 적이 있어서 관심이 갔다

이 책은 읽고 쓰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대화하며 우리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수많은 정보와

글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글을 시작한다

검증되지 않은 자료

정체와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

우리 사회가 경험하는

물리적인 피해 뿐만 아니라

해결이 아닌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글들과 정보들이 넘쳐난다

디지털 세상으로의

전환을 공공과 민간에

그렇게 외치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함께 필수적으로 교육되어야할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의지는

부족해보인다

누구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는 자유화와 민주주의 수준을

더 이끄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프레임 속에 갖혀버린

자유와 소통되지 않는 껍데기 같은

민주주의 속에서

읽고 쓰고 생각하고 소통하는

과정은 생략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개인의 노력부족이라고

하기에는 제도적인 부재와

사회적인 방조에 가깝다는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그 교육을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국의 교육은 과거와

차원이 다른 경제수준임에도

교육시스템은 여전히 시험을

통한 높은 성적과 학벌위계 속의

경쟁과 차별을 용인하고 있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백년대계라는

교육제도는 얼만큼의 본질적인

변화가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겨날수 박에 없다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사회를

생각했을 때 가장 무서운 현상은

사람들이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자기만의 견해를 표현하고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세계가

현실을 대체하는 새로운 차원의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거부감이

생기는 이유는 물리적인 만남을 통해서

서로가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글이 아닌 영상 위주

질문과 대답이 멈춰진 일방적인

단답형의 짧은 텍스트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의 새로운

시너지보다는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제대로 찾고 읽고 사용하려는

태도와 노력의 부재

국가와 미래 세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

중요한 정치적 판단을 위험한 타인들에게 위임

무지한 정보 사용자

역정보의 속임수

오정보의 유동과 재생산

결국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닐수도 있다는 견지적인 시각으로

정보를 읽는 능력이 필요할 때

마지막 줄에 있는 AI와 관련해서는

나와는 조금 다른 입장인데 이것이

맥락상에서의 내가 잘못된 이해를

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AI에 대한 사람들의

무한신뢰를 강화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가 필요해보였다

AI또한 사람들이 선별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데이터들을

학습하며 판단을 내리기 떄문에

난 더욱이 가치판단의 문제를

AI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어떤 목적으로 이뤄지는가에 대한

차이가 공동체의 수준과 삶의 질적

수준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할 때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얼마나

달라졌는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왜 그토록 서울대에 진학하는것을

교육의 최고의 결과물로 여기는 것일까

대학을 왜 가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나중으로 치더라도

학교에서 교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할 것 같다

단순히 교육을 성장기의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한 수단과 대학진학을 위한

시험과 성적들로 채워지는 시간이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싶은가에

대한 대답이 교육제도에 녹아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혐오

그리고 차별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비판적 읽기의 과정을

익히고 적용하는 학습은

필수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리터러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사회 공동체적, 교육적, 역사적

관점에 바라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며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꾸준히

키워나가야 할 자기계발의 영역이

리터러시에 있음을 인지하고

노력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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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와재정의미래 #책후기 #책추천

가장 최근에 읽었던 두 책인 보편적기본서비스(https://blog.naver.com/mvp9521/222761610208) 불평등 해소(https://blog.naver.com/mvp9521/222783040159)와 관련된 책을 읽은 뒤 마지막으로 내가 들었던 생각은, 그래서 어떻게 그 공공서비스와 불평등해소를 위한 정책 실현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는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었다. 당시 책을 빌렸을 때 그 생각들이 하나의 묶음으로 내 머리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인지, 방금 언급한 두 책과 함께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한 #증세 방향이라는 부제목의 이 책이었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본적이 없었고, 그것이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정책기조를 가장 약화시키는 부분이라고 느꼈다. 세금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고는 사실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정말 내가 어렴풋이 용어만 들어본 세금의 명칭들만 알뿐이어서 공부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어나갔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이 책이 얼마나 균형잡힌 시선으로 세금문제를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유의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일반적으로 세금과 관련된 재정에 관한 논의는 특정한 방향으로 유리한 근거만을 활용하는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마지막에 챕터를 끝내면서 말끔히 해소되었고 내가 평소에 가졌던 생각을 한 층 더 넓고 깊게 만들어줬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기록한 책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그만큼 내가 세금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분들이 조금이나마 세금과 증세문제에 대해 친숙해지시기를 바란다. 이 책 역시도 #불평등  #소득격차 에 대한 문제들을 언급하며 글을 시작한다. 노동소득 뿐만 아니라 #자본소득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기본적으로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불편한진실일 수 있겠지만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국민이 내는 세금이 평균 미만이고 미국에 이어 뒤에서 2번째 이니 어쩌면 세금은 적게 내면서 미국과 비교는 안되는 복지수준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세금을 많이 낸다는 대중의 의견들과 달리 국민부담률은 낮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저번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한국은 공공재정으로 사회복지에 지출되는 비중이 매우 낮은 편인 동시에 국민들이 내는 세금부담률도 매우 낮은 편이란느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법인세 에 관한 나의 생각이 가장 많이 바뀌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공공재정을 위해 법인세를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앞으로 나올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나릐 법입세율이 꽤 높은 편이며 그 의존비중이 대부분 대기업에만 치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 내용은 아래로 스크롤을 내리면서 더 확인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누진세 #역진세 #정률세 등 여러 경제상식 중에서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바로 세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금융교육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세금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본적이 없는 것 같다. 금융교육의 범주가 재테크 위주가 아니라 세금과 같은 영역을 기준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금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세금이 부과될 때 발생하는 여러가지 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세금을 부과하고 감면하고 면제해주는 등의 행동이 어떤식으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다시 세수를 확보하는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것들이다. 

고소득자에 대한 누진세(소득이 높을수록 더 높은 세율을 부과)가 부자들의 근로의욕을 저하시킨다는 주장이 드리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니라면 위와 같은 사례를 언급하는데, 단번에 납득이 가는 예시였다.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어떤 하나의 제도나 정책에 대한 좋은점 혹은 나쁜점만을 골라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의 장단점을 고루 이야기하며 새로운 제도를 소개하고 또 다시 그것에 대해 장단점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생각의 폭을 계속해서 넓혀준다는 점이었다. 

저자 개인이 제시하는 방안들에 대한 내용도 함께 제시되면서 다시 한번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고 나라면 저자가 제시한 내용에 대한 또 다른 문제점들은 없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한계세율 일정한 소득이 있는 상태에서 소득이 더 증가되었을 때 증가된 소득에 적용되는 세율. 세율 구조가 누진적이면 과세 표준이 커짐에 따라 한계 세율은 평균 세율보다 더 높아진다.

#평균세율 총소득에 대한 총세금 지불액의 비율. 세금 총액을 과세 대상 소득의 총액으로 나눈 값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증세의 원칙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합리성이 있는지 계속 생각하며 읽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고 문제는 결국 어떻게 대중의 표를 얻어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이와 같은 심리적으로 불편한 해결책을 설득력있게 개진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고 느꼈다. 

 

조세부담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세대간에 갈등이고 이 갈등은 현재 젊은세대가 느끼는 조세부담에 대한 불공평함이 현재 젊은 세대 그 이후의 세대가 느낄 불공평함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결국은 이러한 갈등과 불합리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당 조세제도의 변확가 필요해 보인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주된 내용이 많은 독자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올 이유는 바로 #근로소득 에 대한 한국의 세율이 매우 낮은편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부분 때문이다. 여론에서 느껴지는 국민들의 세금부담을 갈수록 커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세금공제와 세금감면 등의 혜택으로 인해 근로소득에 대한 세원 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한국의 조세제도의 소득 재분배 기능에 관한 내용이 바로 설명된다.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고용주(기업)의 #사회보험료 부담이 매우 낮다는 점이었다. 이 부분은 나에게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항상 기업의 법인세를 통해 국민 개인의 세금 부담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인세율을 늘리는 것은 공공의 복지지출로 이어질 확률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은 기업과 근로자가 각각 부담하는 사회보혐료 50:50의 비율에서 기업이 더 높은 사회보혐료를 부담하는 쪽으로 전환하면서 세금확보다 공공복지지출로 확실히 이어질 수 있게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는 것이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로써 지니계수를 보여주는데 한국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국민이 내는 세금만큼 공공복지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끼는 이유는 사실 재정지출 그 자체가 국민에게 제공되는 공공복지 서비스에 제대로 지출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은 국민들의 삶의 질 확보를 위해 세금을 걷어가면서 그 세금의 사용이 국민들에 수혜자로 느낄만큼 제대로 지출이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할 수 있겠다. 

복지지출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경제분야인데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높적어도 1.6배 많게는 3배까지 차이가 나는데 해당 문제들을 얼마나 해결하는데 재정지출이 기여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드는 부분이었다. 전체적인 비중으로 보면 복지분야라 할 수 있는 사회분야의 사회보호가 가장 높지만 여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며 현저히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국민들이 세금을 내면서도 해당 세금으로 인한 공공복지서비스에 대한 헤택을 누리지 못하며 증세에 반감을 가지게 되는 근몬적인 원인이다. 

조세에 대한 여러 이론들도 소개하면서 이론의 여러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세부담 증가에 대한 부정적 입장에서 주로 내세우는 근거인 경제성장 저하는 사실 유럽 선진국들의 사례를 살펴보며 반박할 수 있고 특히나 내가 현재 듣고 있는 인구개발 수업에서 프랑스같은 선진국들이 인구변화 이론과는 달리 일정한 경제성장을 달성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인구가 필요 일정수준을 유지하거나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 이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았다. 

부의 불평등이 경제침체의 원인라는 점은 오히려 더 게속해서 증명할 수 있는 근거들이 늘어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세와 재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위에서 제시된 불평등 완화에 관한 방법은 살짝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면서 첫째의 사레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둘째의 방법을 이야기 하면서 결국 불평등 완화가 아니라 경제성장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어 앞뒤가 살짝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조세제도에 관한 내용으로 넘어오면서 세금을 거두는 방식 혹은 공제해주는 방식 등의 제도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많은 비효율성과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결국 이러한 제도들을 넓은 세원과 낮은 세율이라는 원칙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좀 더 효율적이고 행정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단순하고 확실한 조세제도가 필요해보인다. 

이제 내가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법인세와 사내보유금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한국의 법인세율은 주요선진국과 유사한 수준

 

법인세 수준도 빠르게 증가했으나 법인세를 통한 세수확대가 내가 생각한 복지지출을 위한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이유가 바로 기업의 사회보혐료 부담이 낮다는 점이었다. 

결국 기업이 납부는 법인세 수준이 낮지는 않지만 선진국 대비 기업이 과도한 부담을 안고 있지 않다는 점 

핵심은 법인에 대한 세금 보다는 해당 기업에서 돈을 버는 고소득자 특히 경영자이자 최대 주주로써 본인의 임금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해당되는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수준의 증가가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법인세 부담 비중 대부분이 대기업에만 쏠려있고 나머지 중소기업인 법인들에 대해서는 법인세 면세혜택이 과도하게 주어지면서 법인세에 대한 공평환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개인의 소득에 대한 세부담이 적다는 점이 한국 조세제도의 특징 중 하나 

또 하나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부분이 #불로소득 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배당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나에게 이러한 점들이 결국 기업에 대한 장기투자를 저해하고 해외자금의 투기 목적의 활용이 한국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는 부분.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은 경영자의 왜곡된 인센티브를 완화하고 소득불평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초고속득 근로소득에 대한 추가세금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배당소득세를 인하하여 급여가 아닌 배당효과를 누리게 한다. 

부가가치세 인상에 관한 부분은 솔직히 이해를 잘 하지 못하였다. 부가가치세라는 것이 결국 어떤 서비스나 물건을 구매할 때 부여되는 세금인 것인데, 이러한 세금이 어떤식으로 불평등 완화에 도움이 되는지 말이다. 

저자는 부가가치세가 소비자의 부담을 증가시키지만 그 세수 증가분을 복지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한 동의를 할 수 없겠지만 명품과 고급차량 등과 같은 사치품목에 대한 사치세를 더 높게 부과하는 것에 조금 더 동의하는 편이다. (물론 그로 인한 세수확대 효과가 부가가치세 인상과 비교할 때 적다는 점이 한계이겠지만) 

스웨덴의 사례가 주로 소개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조세제도를 한국에 도입하는 것이 국민들의 증세에 대한 반감을 줄이면서 한국 경제성장과 주식시장에 대해서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국에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지만 사실, 국민 1인당 의사수는 낮은 편에 속한다. 지난 정권에서 공공의료인 확대를 주장하면서 꺼낸 근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이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의사가 진료를 보는 건당으로 국가에서 그만큼의 소득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거의 마지막으로 #부동산세금 에 관한 문제인데.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 부담이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하나의 사실근거가 먼제 제시되었다. 

그러면서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세금부과를 이야기 하는데, 나는 이 부분에 많은 공감을 했다. 주식에 대한 투자는 경제성장과 시장에 기여하는 바가 있지만 부동산에 대한 낮은 세금은 결국 투기의 목적으로 사회적 가치창출에 일절 기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개인적으로는 국민의 기본권리이자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보장되어야 할 거주의 권리가, 거주의 목적 외의 투기집단에 대한 침해되고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에 대한 세금 부담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1인 1주택과 실거주자에 대한 세금감면과 비과세 혜택을 필수적으로 적용되어 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높은 세원 낮은 세율과 더불어 이 저자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부분은 기업이 근로자보다 더 높은 사회보혐료를 부담하는 것이 필요하는 점이다. 

북유럽을 흔히 우리는 선진복지국가로 이야기 하며 그 나라의 국민들이 누리는 복지혜택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그 일면에 있는 공공재정지출을 위한 조세제도에 대해서는 깊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조세제도의 시스템을 어떻게 한국에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때인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적인 부분들에 대해 배우고 내가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사회개발의 실현방안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포함해 최근까지 읽은 세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개발협력이 국제적인 문제(불평등) 혹은 외교정책의 하나로써 불평등을 해결하는 방안 중 하나였다면 보편적기본서비스와 한국의능력주의 배경의 불평등 그리고 증세방안등이 국내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우리나라를 개발시키는 것에 내가 또다른 깊은 관심이 있었음을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기를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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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라는 단어에 문제가 있다거나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고 해당하는 몫을 가져가는 것이 어떤 문제를 가질까에 대해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다만 그 능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증명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 능력을 갖추는 과정이 어쩌면 한국사회를 더 불행하게 맘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자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의 뒷 표지에 적힌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참지 못하는 한국인” 이라는 글귀 때문이었다. 불평등에 대해서는 꾸준히 관심을 가졌음에도 최근 10년간의 정치적 이슈와 더불어 늘 함께 화두되는 불공정에 대해서 사회적인 차원에서 두 주제를 연결시켜 생각해보지 못했다.

불평등은 어쩔수 없는 숙명이자 개인의 노력부재로 치부하며 쉽게 납득하는 모습과는 달리 불공정에는 불같이 달려들며 적극적 사회 구성원으로써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대답을 저자는 #능력주의 를 그 배경이자 핵심으로 삼는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그것에 문제가 있다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조차 능력의 부재로 보기도 하는 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는 모든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저자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당연시함으로써 줄평등을 재생산하고 이러 인해 민주주의가 악화된다고 지적한다. 매우 도발적인 주장이자 많은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발이 예상되는 발언이지만 책의 첫 말미에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버리는 확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책을 읽어가면서 바로 납득할수 있었다.

2021년 출판된 이 책은 최근의 한국사회의 사회적 이슈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생각하지 못한 관점에서 그 이슈들이 특히 불공정과 관련한 분노의 기저에 깔린 능력주의를 드러낸다. 특히 우리가 말하는 그 능력이라는 것이 정말 외부의 특별한 개입없이 개인의 온전한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갖게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페이지를 찍은 이유도 내가 이 책의 대다수의 이야기들에 깊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단순히 불공정 이슈를 넘어서 시험으로 모든 자격을 부여하고 능력을 측정하는 사회 시스템과 그 틀에 맞춰진 사고를 할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분노는 그 분노를 뿜어내는 주체가 대체적으로는 사회의 기득권 계층이나 권력을 가진 집단이기 보다는 늘 상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정말 본인들이 느끼는 문제의식의 본질에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으며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닌 원인이 되는 시스템과 제도를 의도와 달리 유지하는데 기여한다는 사실이다.

사회가 늘 긍정적이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대중이라는 집단적 사고와 나도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특권층이 되겠다는 열망이 권력을 가진 이들의 지지와 결합되어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능력이라는 그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치는 기술과 그 결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세뇌된 능력주의와 학벌로 이어지는 발언권에 대한 권한 부여로 이어진다.

개인의 재능이 발현되고 그 재능으로 삶과 사회에 함께 기여하는 삶이 없어지고 소수의 재능을 뒷받침해줄 경제적 여력과 시험치는 기술로 모든 이들의 재능을 평가하고 말살하는 시스템이 불행하고 우울한 자살율 1위 국가를 만드는게 아닐까.

학교에서부터는 우리는 늘 시험과 그 결과 스스로를 어떤 사람인가 규정하는데 익숙해져왔고 학벌에 따른 계급화된 상위대학에 진학하지 못할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개인적으로 늘 느끼는 불안감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발언을 할수 있는 기회와 권한 조차 학벌에 따라 정당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시험주의 를 능력주의 최종형태이자 가장 전형적인 능력주의라고 말하는 이 책은 이 능력주의를 철학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추상적 주장이 아닌 한국의 가장 커다란 현실적 단면을 사례로 든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만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기도 하지만 모든 내용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을 필요는 없다)

 

불공정은 어쩌면 불평등에 분노한 대중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파간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우리는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받을수 있다는 거짓에 녹아든듯 하다. 능력주의와 시험주의로 첨철된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이들이 사회적 생산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가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적 역할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회적 중범죄에 대해서까지도 면제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혹여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대로 이미 한국사회가 매우 심각한 수준의 구고적 문제에 직면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능력주의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물론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리고 나의 행동과 발언들의 배경에 그 능력주의가 바탕이 되었음을 확인할수 있었다. 나는 내 스스로 대부분의 것을 일궈냈다고 믿으며 자부심을 가져왔지만 그것은 내가 노력으로 얻지 않은 것들(당연시해왔던)의 발판으로 일궈진 곳이었다. 실패하면 안된다는 사실과 최소한 이렇게는 살아야 하지 않나하는 압박감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심해지고 오히려 어렸을때 더 선명했던 나의 열정들이 사라지는 듯 하다.

정규직에 대한 한국인들의 간절함은 고용안정성에 기인하겠지만, 노동유연성이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의 분절화와 그룹 나누기는 기본적으로 고용주에 대한 노동자들의 연대를 저지하고 그들끼리의 갈등을 재생산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해외의 비정규직 사례를 언급하며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비정규직들이 고용 안정성을 포기한 값으로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지만 우리의 분노는 때론 바보같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이른바 PC라고 불리는 모든 표현에서의 혐오와 차별을 철폐해해야 한다는 사회적 지향성은 종종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또다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그 올바름은 어디까지로 한정지을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런 논란이 생길만한 부분은 충분히 다양한 의견의 형성과정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가장 기본적인 것인 혐오를 할 자유 Hate speech 그 자체가 권리로 인정받을수는 없다는 점이다.

말에는 힘이 있고 그 힘을 사용한 것에 대한 책임이 주어진다. 악플에 대한 처벌과 공동의 이익과 무관한 가십성 거짓 정보 공유에 대한 처벌 또한 이에 기초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공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은 비난과 비판을 구분할 능력을 키우는 것이고, 공감의 지능을 높여 차이를 발견하기 보다는 공동과 공통의 분모를 찾아 여러 형태의 해결책을 제시할수 있는 교육이어야 할것이다.

나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나도 특권층이 되기 위한 욕망에 이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발언할 힘을 가지려면 특권층이 될수 밖에 없다고 다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 등이다.

정말 만약에 내가 특권층이라 불리는 집단에 속하게 될때 나는 과연 얼만큼 불평등에 분노하게 될까 상상에 빠져본다. 불공정은 그 자체로 불평등하기 때문에 생기는 아주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고, 그 공정함이 모두에게 주어지기 위해서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

불평등을 해소해야하는 이유를 홍보를 전략적으로 인식시켜야 할 때 혹은 국제개발협력과 같은 재분배적인 국제적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할때, 가장 중요한 지점은 사실 사회적 약자들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초점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들이 겪게 될 위험을 더욱 드러내는것이 중요한다. 국내의 불평등이든 국가간 불평등이든, 불평등은 그 자체로 불안정한 사회를 만들어 낸다. 평범한 일상이 지속가능하려면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재분배의 축소와 불평등의 심화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재앙의 수순이다.

빌게이츠와 워렌버핏 같은 대부호들이 기부에 대해 높은 소득에 대한 세금을 받아들이는 이유또한 단순히 그들이 선하거나 관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불평등이 자신들의 삶과 자산에 위협이 될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재분배를 위한 세금과 기부가 오히려 더 높은 투자수익율을 가져올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저자의 방대한 자료조사 시간와 그 내용을 배열하는 학문적 깊이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불평등에 대해서 이렇게 다양한 측면에서 추상적 주장이 아닌 근거와 인용을 하면서 주장을 펼칠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올까싶을 정도로!

부자에 대한 과세 인상 논란은 한두번이 아니지만 자본주의와 시장경쟁 논리로 점철된 현재의 미국의 과거 과세 사례가 매우 놀라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과세 인하과정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미국은 절대 롤모델 국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미국은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내는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으로 만들어 진 선진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 내용에 대한 한국에서의 사례는 너무나 확연히 그 대표적인 인물과 그들을 옹호하는 집단(협회 등)이 너무 투명하게 드러나므로 특별한 언급을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소득에 따른 환경기후 이슈의 관련성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가장 발전한 나라 중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 우리가 미국을 떠올리며 만들어 낸 한국의 현실일까. 물론 여전히 난 미국과 비교해 한국이 더 나은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역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조금은 두려워지는 최근의 현실이다.

불평등에 대한 묵인과 용인은 성공과 실패를 모두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사회적 배경에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온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고 실패의 사례를 살펴보면 온전히 개인의 잘못에 기인하지도 않는다.

낮은 자기표현은 우리가 받는 교육과정에 얼마나 공동의 해결을 위한 논리적 주장을 펼칠수 있는 기회와 배움이 있었는가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 주장과 표현에 혐오와 우위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공격적 표현과 본질 흐리기에 매몰된 말하기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해서 크게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사회가 현재의 수준까지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감사함이 사회의 발전된 민주주의로 이어지기 보다는 정치 대표성을 선발하는 과정에 대한 민주주의로만 한정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이 한국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하지 못하고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머무르게 된 원인일 것이다. 힘들게 일궈낸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켜나가야 할 의무가 있음을 느낀다.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내용은 내가 지난 책에서 읽은 보편적 기본서비스에 대한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보였다. 개인적으로 이 정책적 내용을 한국사회에 적용시켜 연구해보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벌주의에 반대하는 말도 학벌 좋은 사람이 해야 설득력이 있다고 느끼는 심성,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힘을 기른 뒤에 행동하라는 조언 = 사람을 차별하는 능력주의자

격차와 특권을 당연시하는 제도와 문화

지난번 책에 이어서 이번 책까지 내가 만족했던 책들의 대부분은 수많은 국내외 자료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들이다. 한국의 능력주의, 이 책 또한 자료출처만 적어둔 페이지만 35페이지가 넘는 정도.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여러 책들을 읽어봤지만 이 책만큼 정확하고 명쾌하게 우리 사회와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배경을 지적한 글을 본적이 없다. 다양한 측면에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매우 추천하는 책이며 다만 아쉬운 것은 여전히 그 능력주의를 대체할만한 선발방법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그 선발의 결과 차별과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선발과정과 방법에 대한 논의는 단순한 시험주의에서 벗어난 논의를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사회와 한국인에 대해 궁금하면 필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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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몇년간 늘상 들어왔던 정치적 소재였다. 자본주의 시대의 정점 속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절대적 규모의 부의 창출을 이뤘고 그 부는 기업의 독점적 자본으로 남겨졌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경제적 소득을 위한 안정적 노동기회 오히려 줄어들었고 일자리는 부족하다 외치며 실업률이 최고치라는 기사들과 무색하게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많은 최첨단 기술들의 진보와 성과를 외친다.

인구가 줄어들어서 문제라고 하면서도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책임은 여전히 개인에게 남겨지고 아이를 낳음으로써 한 개인이 포기해야할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불편해한다. 일자리도 없으면서 아이는 왜 낳으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고, 그러면서도 끝없이 자본의 규모에 따라 커져가는 경제적 불평등과 지역격차에 대한 언급은 여전히 나중의 문제로 치부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기본적 소득이라는 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현금을 단순 지급하는 것의 실현가능성과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큰 효과성을 발휘할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코로나19 지원금과 같이 보편적 현금성 지원이 나를 포함한 국민들의 잠깐의 녹으면 사리지는 사탕의 달콤한 대신 어떤 그 이상을 남겨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었다.

기본소득이 아닌 보편적 기본서비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내가 가진 의문들에 대해서 알아볼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특히 대학원에서 개발정책학을 전공하는 있는 나에게 개발이라는 것이 개도국을 위한 것만이 아님을 확실시 해주었으며, 선진국 반열 속에서 더 심화하는 불평등사회를 지속가능하게 개발할 방안들에 대해서도 고민할 기회를 주었다.

개인적으로 가능하다면 이미 졸업 페이퍼를 위해 제출한 주제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지속가능개발에 대해서 이야기할수 있는 페이퍼도 작성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책 도입부에 언급된 제법 익숙한 제목의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이름의 브룬틀란 보고서에 대해서 원문내용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서비스로서의 보편적 기본서비스는 기본소득과 같은 현금성 지원에서 늘 비판받는 경제적 편익분석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이 가지고 있는 그 단순성이

가지는 부작용들에 대해서도 알수 있었는데, 난 이런 현금성 지원들이 적어도 한국과 같은 선진국 반열의 국가에서는 빈곤층을 제외한 긴급한 계층을 제외하고서는 정치적 돈 뿌리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가 우리는 이미 의료서비스, 공교육, 치안 등과 같은 생활 분야에서 보편적 기본서비스를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실현불가능한 정책이 아님을 확인할수 있다.

 

이 책에서는 보편적 기본서비스의 확대하여 그 범주안에 들어와야 할 분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 내용들은 내가 앞서 이 블로그 글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할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느꼈다.

KDI국제정책대학원을 다니면서 나의 시각이 좀 더 확장되었다고 느낀 점이 바로 정책에 대한 경제적 편익분석을 고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그럴싸하고 착하고 좋은 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자본주의 시대 속에서의 현실에 끼칠 긍정적 결과outcome을 증명할수 있어야하는 것.

인구감소로 인한 세수확보가 어려워진다는 현실속에서 이러한 보편적 정책들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에 쉽게 매몰되고 논의할 가치 혹은 그 시기마저 적합하지 않다는 물타기에 쉽게 휩쓸린다.

그러나 그것은 시한폭탄을 수건돌리기 하듯이 언제가 터질 문제들을 눈 가리고 아웅하는것과 다를바 없다. 솔직히 얼마나 현실정치의 세계에서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을 심도깊게 고민하고 토론하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그 게으름에 놀라게 될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그리고 그 빠른만큼의 부의 증가에만 중독되어 나무조각이 하나씩 빠져가는 위태로운 젠가게임이 되어가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회같아.

복지에 대해서 살짝 얘기를 꺼내어도 나라의 빚이 어쩌니 부채가 어쩌니 나라가 망한다며 호들갑이지만, 정경유착의 부패에는 기업 죽이기라며 쉽게 죄를 사면하고 부의 분배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도 기업 하나의 최고실적이 나라 전체의 국민 전체의 부의 창출인듯 떠든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는 기본소득이 가진 현금성 지원의 모든 제약들을 해결할 실마리인 보편적 기본서비스에 대해서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보편적 기본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출하는 일회성 혹은 소모성 정책을 조절하며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이용한 법인세 그리고 사치세에 대한 것으로 일단 시작될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은 마치 잘 정리되어 읽기 쉽고 편한 논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제 사례와 실증적 근거들로 가득하다. 이 책을 반박하는 또 다른 내용의 글이 있다면 그 또한 읽어보고싶을 정도다.

복지정책은 부정적인 관점에 편익없이 휘발될수 있고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수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현실정치에서 국민들에게 시혜적인 태도로 내려지는 단기 현금성 지원들이다. 특히 가난한 이들 중산층인 이들 부자인 이들을 모두 불편하게 만드는 선별적 현금뿌리기는 더욱 그렇다.

보편적 기본서비스의 본격적 확대는 그러한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는 단계의 정책이며 자본주의 시대 속에서 양질의 경제성장을 지속할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의 GDP 대비 부채는 현전히 낮은 편이며 그 중에서 공공서비스에 대한 지출은 더욱 낮다. 차마 복지효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조차도 어불성설이라 느껴지는 규모다. 이 정책을 당장 시작하자는 주장 대신 이러한 정책들을 공론의 장에서 가장 핵심이 될 사안으로 우선 만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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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삶과 죽음에 대한 마지막 인생 수업이 시대의 대표지성 이어령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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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고 있었거나, 그의 이전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 건 전혀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대학원 생활에 잠시 눈을 돌리고자 오랜만에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기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보았고, 이어령이라는 이름이 눈에 익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한 지인이, 지금은 고인이 된 이어령 작가에 대한 추모글을 올린 것이 떠올랐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없으면서도, 내 주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나에게 각인시킨 것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이어령 작가의 제자라고 하는 김지수 저자가 그를 인터뷰하며 남긴 기록들이다. 김지수 저자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로 유명하다고 했다. 제자와 스승이라는 관계와 죽음을 앞둔 스승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채워진 책은 담담히 이어령 작가의 삶과 철학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인터뷰어인 김지수 저자가 인터뷰를 이끌어 나가며 질문이 아닌 대화를 한다는 점에서 그 형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 이어령, 넥스트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 이어령, 넥스트 생은 선물, 죽음은 탄생의 그 자리 변함 없어 진짜 죽음은 슬픔 저 너머에, 이어령식 작별인사 하늘에 별처럼, 자기 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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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동기가 이 책을 추천하면서 살짝 걱정하는 뜻으로, 기독교적인 가치관들이 드러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써 그 책 자체가 포교의 목적이 느껴진다면 당연히 거부감을 느꼈을터이다. 하지만 이어령 작가의 기독교적인 신앙은 본인 개인의 가치관이자 하나의 영역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또한 그 내용 자체가 주를 이루고 있지도 않다. 그의 삶과 가치에서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진 영향을 읊을뿐. 이 점이 오히려 그의 말들이 좀 더 몽글몽글하게 느껴지게 했다.

암 투병을 하고 있으며 시한부의 삶을 선택한 이어령 작가는, 죽음에 저항하며 치료를 받으려 하기 보다는 그 죽음에 몸을 맡기고 항암제가 가져다 줄 기적의 치료보다 담담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라고 느껴진 대목이었다. 철부지 같은 꿈이었겠지만, 아니, 아마 지금도 원하고 있을지 모르는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죽음은 침대에서 자연스레 잠들며 떠나는 것이었다. 죽음을 미리 아는 것이 너무 두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었다. 준비된 죽음이야말로 가장 온전한 죽음이겠구나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본인에게도 남은 이들에게도 황망하고 서글프다. 암이라는 질병에 걸린 것이, 그리고 그것이 치료될수 없다는 사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어쩌면은 행운적인 죽음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어령 작가처럼 자신의 삶과 생각을 명확히 가지고 그것을 남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이라면 죽음이 어쩌면 그렇게 허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상한 부러움을 느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겠다는 선언이구나를 깨닫게 했다. 어렸을 때 부터 줄곧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없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던 난, 그 답을 찾아가는게 삶이다라는 자전적 결론을 내렸다. 삶의 이유가 아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핵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어령 작가의 삶과 나의 삶은 다르겠지만, 단 하나 그의 삶을 보아 내가 원하는바가 있다면, 그처럼 끊임없이 사유하고 호기심을 잃지 않은체 삶을 이어나고 싶다는 점이다. 대학원생이자 취업준비생인 나에게 당장의 불안은, 시험성적과 장학금 그리고 취업이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이 앞에서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과정일뿐일 것이다. 눈을 감기전 나는 그때, 성적을 잘 받지 못해 장학금을 놓친 것을 후회할까? 아니면 성공적인 취업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까? 죽음을 떠올리며 사는 삶이 그 반대말인 살아감을 더 선명히 해준다.

나의 죽음 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할 때 나의 감정을 그려보면 그 대상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도 떠오른다. 그렇게 죽음은 사라지는 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이고 나아갈 길의 나침반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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