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광역자치단체 간 쓰레기 매립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최근 “쓰레기 정책의 기본은 발생지 처리가 원칙”이라며 자신과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지역 구청장 24명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1989년부터 수도권 주민 2600만 명의 쓰레기를 관할 매립지에 처리해 온 인천시가 2025년까지만 서울과 경기지역의 쓰레기를 받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인천의 수도권매립지를 더 사용해야겠다고 맞서고 있다. 근거는 2015년 환경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의 4자 합의에 있던 단서 조항이다.
‘현재의 매립구역 사용이 끝날 때까지 대체 매립지를 구하지 못하면 추가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대체 부지가 정해질 때까지 쓰레기 배출을 줄여 나가면 최대 2028년까지는 이 매립지를 쓸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인천시는 2025년이면 이 매립지 사용을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쓰레기 묻을 곳이 사라지고 있다. 배출량은 늘어나는데, 매립지는 포화 직전인 것이다. 앞으로 4년 이내에 수도권과 광주 대전 등 전국의 매립지 3분의 1이 가득 찬다. 2030년이 되면 사용 가능한 매립지가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인적 드문 시골 들판과 창고에서 볼 수 있던 ‘쓰레기산’이 몇 년 후 도시에 나타날 수 있다.
17일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생활폐기물 공공매립지는 전국 215곳. 동아일보가 이들 매립지의 사용 가능 기간을 분석한 결과 2025년 이전에 65곳(30.2%)이 포화상태가 된다. 집이나 가게에서 버린 쓰레기를 처리할 곳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포화상태의 매립지가 2030년에는 120곳(55.8%)으로 늘어난다.
국내 생활쓰레기 배출량은 갈수록 늘고 있다. 17일 환경부에 따르면 국민 한 명이 하루에 종량제봉투에 넣어 버리는 쓰레기는 2010년 0.96kg에서 2019년 1.09kg으로 늘었다. 생활쓰레기는 땅에 묻거나 태워야 한다. 하지만 매립지는 빠르게 차고 있다. 소각장 수는 10년째 제자리걸음(전국 180여 곳)이다. 매립지와 소각장 모두 주민 민원 탓에 신규 조성이 거의 불가능하다.
쓰레기가 늘면서 이를 처리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 역시 증가하고 있다. 폐기물 매립 및 소각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2010년 1500만2000t에서 2018년 1700만1000t으로 늘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2.3%다. 그만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선 폐기물 감축이 필수 과제가 됐다.
환경부는 10일부터 7월 9일까지 60일간 수도권 대체매립지 후보지를 재공모한다고 밝혔다. 조건은 생활폐기물 및 소각재, 불연성 폐기물 등을 매립할 전체 부지 130만㎡, 실 매립면적 100만㎡ 이상을 확보한 지역이다. 후보지 경계 2㎞ 내 세대주 절반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최종 선정된 지자체에는 법정지원금 외에 특별지원금 2500억, 반입수수료의 50% 가산금 등 금전적 혜택을 지급할 예정이다.
수도권매립지는 서울과 인천, 경기도 약 2600만명이 배출하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장소다. 환경부는 현재 세 지자체가 폐기물 배출량을 줄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2027년까지 현재의 수도권매립지를 사용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앞으로 직매립을 줄이고, 소각 후 잔재를 매립하는 방향으로 최종 매립되는 폐기물의 양을 더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4일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더는 생매립은 안된다는 점을 지자체장들에게 명확히 했고, 상반기 내에 수도권매립지 처리 방안에 대해 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인천, 경기 2600만 주민들이 배출한 쓰레기는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에 모두 집결된다. 하지만 인천시는 ‘발생지역 처리 원칙’을 내세우며 2025년 사용 종료를 선언했다. 박 시장이 서울 구청장들에게 보낸 글에 “발생한 곳에서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 바로 환경정의”라고 못 박았다. 더 이상 서울, 경기 지역의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한 번 더 확인한 것이다. 박 시장은 이미 인천에서 나오는 쓰레기만 처리할 자체 매립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2015년 환경부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가 합의한 4자 합의 이행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6년 수도권매립지 사용 종료를 앞두고 ‘매립지 사용 최소화 노력’을 전제로 매립지 3-1공구(103만 m²)를 추가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서울시는 당시 합의안을 근거로 ‘대체 부지를 마련할 때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취임 한 달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4자 간 협의 내용대로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현재 반입되는 쓰레기양을 줄여 매립지 포화 시기를 늦추면서 대체 매립지를 찾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수도권매립지공사도 “매입량이 줄어드는 추세를 감안하면 2027년까지 사용이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당장 지난 6일 박남춘 인천시장은 재공모를 앞둔 상황에서 "지난번 공모처럼 성과가 없을 것"이라 말했다. 박 시장은 △새 매립지도 기존 수도권 매립지와 다를 바 없는 대규모 지상 매립 방식인 점 △소각시설 등 부대시설까지 집중화시킨 점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이런 조건을 감수할 수도권 내 지자체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다 내년엔 대선과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중앙정부가 조정하거나 지자체들이 선뜻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있으나 마나 한 수도권매립지 반입총량제>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994775.html
수도권 쓰레기매립지에 들여놓을 수 있는 1년치 생활폐기물량을 기초자치단체별로 제한하는 ‘반입총량제’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정을 어겨도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는 탓에 지난해 서울·인천·경기 기초단체 4곳 중 3곳이 총량을 위반했다.
반입 총량을 넘기면, 초과매립량에 따라 가산금을 부과하고, 반입 정지 등 벌칙을 준다. 하지만 에스엘공사가 벌칙 수위를 낮춰 제재 효과를 스스로 무력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수도권 매립지로 쓰레기를 보내는 수도권 기초지자체 4곳 중 3곳이 반입량을 위반해 폐기물 처리 대란이 우려되자 반입 정지 기간 쪼개기를 허용해준 게 대표적이다. 반입 정지 닷새 처분을 받을 경우 지자체가 이틀과 사흘씩 나눠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자체로서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별다른 지장을 받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벌칙의 효력은 미미했다.
수도권 주민들이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린 쓰레기 중 일부는 소각장으로, 소각되지 못한 나머지는 전부 수도권매립지로 간다. 경기 북부 포천에서도, 남부 평택에서도 쓰레기를 수도권매립지로 보내니 폐기물을 처치할 곳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매립지를 향한 반감 등으로 이번에도 응모가 없을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적지 않다. 수도권 3개 시도가 대체매립지 후보지가 나타나기만 기다리지 말고 폐기물 관리와 저감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대체매립지 선정이 늦어지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10일 성명을 내고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시민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환경부로서는 난감하다. 폐기물관리법상 환경부는 매립지와 관련해 조정·자문·중재 역할에 그친다.
매립지 처리는 지자체 책임으로 이미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공모에서도 응모가 없는 상황이 돼도 지속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라며 “대체매립지 응모가 없을 경우까지 포함해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정애 환경부 장관의 ‘대체매립지 플랜B는 고민하지 않는다’는 최근 발언에 대해 “그간의 지자체 간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단 취지”라고 했다.
대체매립지를 찾기까지 극심한 진통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매립지 모색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수도권 단체장들이 더 적극적인 폐기물관리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어느 지자체가 ‘우리 땅 이만큼 있으니까 쓰십시오’ 하겠느냐”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강도 높은 지자체별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제로)를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총장은 “배달용기를 써야 한다면 이를 어떻게 잘 회수해서 물질로 재활용할 것인가, 이런 방법론을 고민해야 한다”며 “불과 얼마 남지 않은 2025년까지 대체매립지 확보 비용 일부를 ‘어떻게 대체매립지를 안 만들지, 폐기물량을 얼마나 줄일지’에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