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생 김재순 씨는 지적장애가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다 2018년 2월부터 광주광역시의 한 폐기물재활용처리업체에서 일했다. 일이 힘들어 1년여만에 퇴사했지만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3개월 뒤에 같은 회사에 재입사했다. 그리고 10개월 뒤인 지난해 5월 22일 그는 폐합성수지 분쇄 작업을 하다 파쇄기에 빨려들어가 사망했다. 현장에는 파쇄기 덮개도, 작업 발판도, 기계를 멈출 비상 리모컨도 없었다. 2인 1조가 원칙인 고위험군 작업임에도 그는 헬멧도 쓰지 못한 채 홀로 일했다.
중대 재해의 80%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0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노동자의 77.8%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5인 미만이 40.2%, 5인 이상 50인 미만이 37.6%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시행을 3년 미루기로 했다. 장애인 노동자의 대부분이 2024년까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유예기간 이후에도 40.2%의 장애인 노동자는 여전히 방치된다는 얘기다.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지만 장애인 노동자 상당수가 일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법 적용이 2024년까지 3년간 유예됐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장애인 노동자의 40.2%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37.6%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김씨가 일하던 조선우드도 노동자가 10명에 불과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중대재해의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더 많이 죽는 사업장에서 법이 촘촘해야 하는데 거꾸로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명의 20대 청년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용역회사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이선호(23)씨가 지난달 22일 경기도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정리작업 도중 구조물에 깔리는 사고로 숨졌다. 주로 검역 업무를 맡던 이씨는 이날 처음으로 컨테이너 관련 업무에 투입됐다.
위험하고 생소한 일을 시작하면서도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고 안전장비조차 지급받지 않았다. 이씨는 중장비인 지게차와 함께 일했지만 안전을 관리하는 책임자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한마디로 ‘안전 공백’ 상태였다.
이런 상황은 너무도 낯익기에 비통함이 더하다. 2018년 입사 3개월 만에 홀로 위험 업무를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당시 24살)씨, 2017년 특성화고 현장실습 도중 프레스에 눌려 숨진 이민호(당시 18살)군, 2016년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아무개(당시 19살)군…. 산업현장에서 안전관리 소홀로 젊은 목숨을 잃는 비극이 언제까지 되풀이돼야 한단 말인가.
사고가 난 뒤 여야 의원들이 현장을 찾고 해양수산부가 기관장 회의를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내년에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을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정을 추진하는 등 제도 보완 움직임도 시작됐다. 하지만 법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동법 전문가인 기영석(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사고가 난 뒤에 원인을 추적해 보면 여러 위험 요소가 겹친 경우가 많다”며 “특히 사업장 책임자는 안전관리 인력을 제대로 배치하고 안전관리 조치를 이행하는 게 가장 중요하며 비용 감당이 어려운 영세사업자를 고려해 공적 차원의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번 비극을 통해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는 안전관리나 교육 측면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기업은 이런 현실을 직시해 소속 직원뿐 아니라 영세 하청업체 직원에게도 안전 확보에 빈틈이 없는지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취재를 진행할수록 점점 선호 씨가 '쉽게 떠났다'라고 말할 수는 없게 됐습니다. 그날 사고 현장에는 작업 유도원, 즉 신호수가 없었습니다. 현장 작업반장, 즉 작업 지휘자는 다른 작업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고가 난 개방형 컨테이너엔 날개가 천천히 접히도록 하는 스프링도 없었습니다.
쉽게 떠났다기엔, 선호 씨가 죽지 않을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신호수가 선호 씨를 봤다면 지게차 기사에게 멈춤 신호를 보냈을 것입니다.
경험 많은 작업반장이 있었다면 무리한 작업지시도 없었을 것입니다. 안전 교육을 받았다면 안전핀 빠진 컨테이너 아래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컨테이너를 점검해서 스프링을 달아 놓았다면 선호 씨가 몸을 피할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원청 업체가 이렇게 마음 놓고 '위험의 외주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원청 업체와 계약을 맺고 항만 운영 전반을 관리·감독할 권한은 해양수산부에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항만 노동자의 작업 현장을 근로감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수부는 항만에 대한 안전관리 권한이 없어서, 노동부는 해수부 관할까지 감독할 인력이 없어서 문제를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원청, 해수부, 노동부 중 하나라도 제 역할을 했다면 선호 씨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경우의 수는 여기서도 많았습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90865&code=11171111&sid1=yeo
이번 사고는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19살 김군,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24살 김용균씨 사건과 유사하다. 위험의 외주화가 부른 참사로 우리 사회는 또 한 명의 청년을 잃었다.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에서도 사망사고가 이어졌다. 한 해 평균 2400명 하루 6명 이상이 일터에서 죽어 나가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도록 하겠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시행령 제정을 앞두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 법은 노동자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표이사 등 경영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는데, 경영 책임자의 범위를 놓고 노사 간 의견 차이가 크다.
이르면 이달 중 확정돼 입법 예고될 전망이지만 노사 의견수렴이 안 되면 연기될 수도 있다. 노사는 예정대로 내년 1월 현장에서 법이 제대로 시행돼, 이런 황망한 죽음이 없도록 조속히 최종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근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자 신규 일자리로 플랫폼 노동이 대세인 것처럼 언급된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자는 대부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외주'화 된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3권이 없는 신규 일자리 양성이 마치 대단한 성과인 것처럼 뉴스에 보도될 때, 어처구니가 없다.
프리랜서 노동자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 노동자로서의 불합리함을 겪는다.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기에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권력관계가 굳건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동권을 박탈당한 나는 그 누구보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서로 다른 위치에 서있음을 깨닫는다.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의 주요한 게시글은 갑질에 대한 것이다. 프리랜서 노동자의 불안정한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무리한 지시를 한다거나, 추가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거나, 인격적인 모독을 당한다거나,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지만, 일을 받을 때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