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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지 않다-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 경쟁적 혐오를 넘어 같음에 연대하자 #책후기


공정하지 않다 - 박원익/조윤호, 지와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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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청년들이 남녀 대결 프레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반발하는 것은, ‘최종 보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평범한 개인들에게 연대책임을 요구하는’ 불공정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원인’을 없애려고 할 때 오늘의 싸움은 내일을 위해 희망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내 편’이 된다. 하지만 나쁜 개인을 탓하는 풍토가 생겨나면 이런 다수의 연대는 어려워진다.

 

● 진보 진영이 올바름이라는 가치에 집착하여 자유를 포기하는 사이 특권층을 비호하는 극우 보수 세력은, 표현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엮어 정말 자유로운 세상을 위한 개혁을 막는다.

 

● 국가는 공적인 불공정과 불합리와 불평등을 없애야 하는 것이지,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개인의 윤리를 교정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 학생들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들, 대중들은 나쁜 사상으로 가득찬 대중문화로부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기에 대중문화를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PC주의자들,

 

● ‘불편함을 통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PC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더 많은 반대파를 만들어내는 일이 과연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일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가능하려면 ‘너는 결국 내 처지를 알 수 없다’는 태도나 ‘나는 결국 너를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벗어던져야 한다. ‘고통에 대해서 경쟁하기’를 벗어던지면 상대가 가진 극단적인 모습에만 집착하게 되는 함정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 고통을 비교하는 데만 집중하면 앞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굳어진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때문에 불평등 사회에서 서로 갈등하고 혐오하는 데 질려버린 청년세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통을 경쟁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누가 더 피해자인지 경쟁하지 말자. 고통과 불행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입맛에만 맞는 것들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대가로, 인식에 대한 교정이나 확장은 포기한다. 공론의 장으로 나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비판하고 설득하기보다는, 듣기 싫은 말과 보기 싫은 것들은 타임라인 밖으로 밀어내고 자신만의 높은 성을 짓는다. 성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폐쇄적인 타임라인 안에서, 각자의 주장은 자가발전하며 더욱 공고해진다. 발달한 매체가 소통을 원활히 해주기보다는 소통을 거부한 상태로 특정한 성향만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 젠더갈등으로 청년세대가 갈라지면서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서로가 싫어하는 커뮤니티에서 ‘빻은(주고받은) 발언’을 캡처해 올리는 현상이다. 예컨대 남초 커뮤니티에는 ‘여초 카페 수준’이라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여초 카페에서 군인을 비하하는 글이나 남성혐오성 글이 올라오면 이것을 캡처해 올리며 “페미니스트들이 이래서 문제”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여초 커뮤니티에도 ‘남초 커뮤니티 수준’이라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남초 커뮤니티에 올라온 여성혐오성, 성희롱 게시물을 캡처해 올리고 마찬가지로 “이래서 한남들이 문제”라고 비난한다.

 

●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이 말하는 ‘미러링mirroring’은 오늘날 청년세대들이 ‘공통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행동’이 될 수 없다. 미러링은 잘못한 이들의 행동을 반대편에서 똑같이 반복함으로써 그 잘못을 드러내겠다는 수법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진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적들만 만들어낸다.

 

 

 

● 영화 〈데드풀〉은 소수자와 약자를 선하기만 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듯이 서로를 놀리기도 하고, 편견도 드러낸다. 영화에서 주인공 데드풀은 레즈비언 커플이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하러 오자 “너희 커플이었어?”라며 놀란다. 커플 중 한 명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거냐’라는 의미의 표정을 짓자 데드풀이 “너 같은 녀석이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 놀라운 거야”라고 말한다.

 

서로의 차이점을 찾아내는 데만 집중하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은 점점 줄어든다. 여기서 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다 함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같음’에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경쟁적 혐오를 넘어 같음에 연대하자


 

 

는 95년생이다. 요즘 책에서 언급되는 새롭고 독특한 세대라고 언급되는 90년대생의 딱 중간인 것이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늘 새로운 세대에 대한 명칭을 붙이고 그 세대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들을 보기는 했지만, 나는 한번도 나의 또래세대가 이렇게 분석되고 해석되어야 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90년대생이온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나의 또래 세대들이 정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대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느겼다. 나에게는 당연했던 일상적인 것들이 다른 세대에게는 신기할 수 있다는 점이 더 신기했다.

 

공정하지 않다는 90년대생이라는 특징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90년대생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90년대생이온다의 심화버전이라고 할까. 무엇보다 이 책은 90년대생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90년대생들이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책이다. 저자가 분석한 90년대생은 내가 느꼈을 때 근거가 탄탄하고 설득력 있었다. 마치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각 특징에 대한 사례들도 읭?스러운 것 하나 없었다.

 

 

자는 90년대생들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에 분노하는 세대로 규정하면서 더 나아가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현상에 대해 해석한다. 젠더갈등, 정치적올바름(PC), 커뮤니티의 폐쇄성, 페미니즘, 미러링 등이 주요한 화두로 제시되는데, 전반적으로 나는 혐오를 극복하는 것,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이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들이 서로의 차이에 집착하기 보다는 서로 같음에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와 나의 생각의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슷한 의견과 자료만 공유되는 한쪽으로 치우진 폐쇄적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소통은 한쪽으로 치우친 연대를 형성하고 서로 다른 입장 차이와 상대진영에 대한 일반화는 경쟁적 혐오를 발생한다. 이는 문제 해결이 아닌 새로운 갈등을 조장하는데 기여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나는 사실 찬성과 반대 딱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점에서는 PC주의가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또 그것이 새로운 검열, 폐쇄, 숨겨야하는 것들로 치부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단어)가 차별적이고 편견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들을 언급하는 것조차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 책에서는 PC주의가 다양한 의견이 공유되고 문제에 대한 개방성을 막는 검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미러링이 또 다른 혐오를 형성하는데 기여한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난 살짝 달랐다. 사회구조적 혹은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형성된 개인의 일탈적(이리고 표현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행동에 비난하거나 일반화 하는 것은 문제다, 사회구조 개인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원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실 저자의 말에 틀린 말은 없다. 나도 전반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고 무엇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고통에 대한 경쟁보다는 같음에 공감하고 연대하여 사회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 한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고 느꼈다. 나는 메갈리아와 같은 커뮤니티의 미러링이라는 방식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미러링을 통해서 불러온 그 효과, 남성들이 여성혐오에 대해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조심하지도 않았으며 성적대상화가 일상적이었던 그 문화에 균열을 가게 했다고 생각했다.

 

 

미투운동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이 지금까지도 뜨거운 이슈로 언급되는 원인을 생각해봤을 때 말이다. 누구나 도덕적으로 옳고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방식이 최선이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는 처음부터 쉽지 않다. 나는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는 같음에 더 집중하고 연대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너희는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절대 이해하지 못해" 라며 배척하는 태도에 변화를 보여야 하는 것은 사실 저 주장을 하는 집단보다는 상대집단의 개인들이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90년대생들을 어떠한 하나의 것을 규정하는 것,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특징을 알아보는 것은 이해의 자세로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또다른 일반화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기성세대에서 90년대생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 보다는 세상을 바꾸어 나갈것으로 기대되는 내 또래의 90년대생들을 응원하고 싶다. 지금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과정은 자연스럽고 당연한것으로, 지치지 않았았으면 좋겠다.

 

[공정하지 않다-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 

경쟁적 혐오를 넘어 같음에 연대하자 #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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