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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 장한업 / 아날로그(글담) (2018)

 


 

우리가 쓰는 언어 우리가 만들어 낸 차별 : <차별의 언어> 리뷰

 

 

 

차별의 언어

다양성을 장려하는 시대에 곳곳에서 생겨나는 차별의 언어를 말하다!국내 만연한 차별의 시선을 고치고자 노력해 온 장한업 교수의 『차별의 언어』. 언어가 한 개인의 사고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사회적인 차원에서 살펴봄으로써 다문화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한국인의 언어풍경을 보여준다.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이들과 더불어 더 잘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결과를 만나볼 수 있다.왜 한국인은 ’우리‘라는 표현을 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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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자를 쫓아내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문제를 단순화하여 대중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다.

● 나의 생각 :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다름이 아니라, 같음을 교육해야 한다

▶ wrong이 가치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면, different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한 쌍을 이루는 그림이나 사진은 다를 수는 있어도 틀릴 수는 없기 때문에 ‘틀린 그림 찾기’가 아니라 ‘다른 그림 찾기’라고 해야 하고, 아주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부분 찾기’라고 해야 합니다.

▶ 단일민족과 단일문화의 허상 / 과도한 우리주의 / 집단주의

▶ 즉 조승희라는 한 사람의 개인적 일탈로 규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민자들을 미국 사회에 잘 적응시키지 못한 자신들의 정책을 탓했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에 대한 한국인의 과민 반응에 대해 의아해했지요.

▶ 참고로 왕자는 당시 서른 아홉 살의 중년이었고 공주는 열여섯 살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 나의 생각 : 꽃다운 나이가 아니라 어린 나이였을뿐

(차별의 언어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표현은 지양해야하지 않았을까)

▶ 캐나다의 헌법인 권리·자유 헌장 제10조는 열네 개의 차별 요인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종, 피부색, 민족, 국적, 성별, 임신, 성적 지향, 결혼 여부, 나이, 종교, 정치적 신념, 언어, 사회적 조건, 장애입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구분하거나 배제하면 캐나다에서는 차별이 됩니다

▶ 사회심리학자들은 자신의 편견을 없애려고 하기보다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라고 충고합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 우리가 만들어 낸 차별

 

 

대한민국이 다문화사회가 되었다는 기사와 뉴스가 보도되었을때가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초중고를 다니면서 다문화교육이란 것을 받았다는 기억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인권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읽었던 책들을 통해서 다문화, 이주자, 이민가정, 외국인근로자 에 대해서 알아갔고, 그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세계시민교육을 접할 기회가 생겼고 나는 주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세계시민교육을 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다문화교육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차별이라 하면 가장 대표적인 인종차별과 성차별인데, 이를 우리나라의 집단주의와 우리주의의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책 차별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나라가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 듯한 단일성과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의 차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차별은 다름에 대한 배척을 의미하고 다양성에 대한 억압이다. 이는 단순히 이주민 혹은 다민족성으로까지 연결짓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남들과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 누군가가 겪고 있는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자세, 오로지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 앞선 민주주의는 회사 문앞에서 멈춘다 라는 책의 후기에서 남긴 것 처럼, 군대식 조직문화로 대표되는 집단주의, 단일성 등은 한국사회를 차별의 사회로 만드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다문화교육의 실패라는 주제로 쓴 기사를 보았을때, 정말 엄청 난 충격을 받았었다. 다문화교육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강조하는 중심으로 이루어져 오히려 다수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학생들이 느끼는 반감, 아 결국 너와 나는 다르다는 것을 더욱 각인시키게 한다는 것이었다. 차별에 앞서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르다는 사실보다는 어떤 부분에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강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한명의 개인이 집단에 속해 있어 집단과 개인을 동화하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집단에서는 개인이 존재할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집단이라는 단어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공동체는 한명의 다양한 개인이 모여 동일한 것에 대해 서로 마음을 공유한다면 집단은 개인이라는 다양성은 해체되며 집단으로서의 하나를 강요한다. 한국사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문화시화와 다문화교육이 둘 중에 어떤 것에 해당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 내가 올렸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이야기는 책 차별의 언어와 매우 연관된 단어인것 같다. 페미니스트를 페미나치, 페미꼴통 등으로 비아냥 되듯이 정치적 올바름도 PC충 등으로 조롱되는 글들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차별의 언어의 거론 사례들을 보면서도 특정 사람들은 진지충, 씹선비, PC충이라며 일컫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겠지만, 이럼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차별의 언어는 더욱더 수정되어야 한다.



 

초등학생들 혹은 청소년 더 나아가 나이에 상관없이 재미를 위해서 누군가를 차별하는 언어사용과 단어선택이 차별의 사회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각 인식에서 편견이 자라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주의는 음악, 영화, 예능, 드라마 등 각종 대중예술과 매체에서 더욱 신경써야 한다. 이것이 하나의 검열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되지만, 공적기관이 검열을 통해서 이를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사람들 스스로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테러를 두려워하고 이슬람을 배척하고 난민을 혐오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게 모르게 또는 의도적으로 비의도적으로 쓰는 차별의 언어를 생각하고,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차별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도 글을 쓸 때, 누군가와 이야기 할때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차별의 언어> 장한업 / 아날로그(글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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