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이자 당시 태국 총리였던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쿠데타로 실각한다. 태국 정치는 2006년부터 탁신을 지지하는 탁신계와 탁신을 반대하는 반탁신계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 실정이다.
탁신은 신자유주의자에 부패한 인물이었지만 농민과 빈민들이 지지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나름 지지를 받고 있던 인물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집권 기간 중 2002년에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 'UC'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 보편적인 의료보험 성격을 가진 정책에 대해 기득권층에서 큰 반발이 있었으며, 그래서 군부가 2006년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로 이 의료보험 정책이 지적되기도 한다.
2014년 쿠데타 이후 태국 군부는 탁신이 만든 의료보험 정책을 폐기하고 그 돈으로 무기를 사겠다고 하면서 반발을 일으켰고, 이후 독단적인 개헌을 추진하게 됐다. 국회를 양원제로 바꾸고, 상원의 대다수를 군부에서 임명하는 식으로 바꿨다. 총리 선출 또한 하원 독자 선출에서 양원 협력 선출으로 변경해버렸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선거제도를 통해 원내 진입에 성공한 정당이 등장한다. 번역하면 미래전진당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퓨쳐포워드당이다. 그러나 군부는 이 당을 2020년 2월에 해산시킨다. 이 당 대표 타나톤 중룽르앙낏 대표가 당에 거액을 대출해줬다는 것을 빌미로 삼았다.
퓨처포워드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이에 불복하면서 시위를 할 때마다 세 손가락 경례를 하게 된다. 이 경례는 2014년 쿠데타 반대 시위에서도 나타났던 경례로, 퓨처포워드당 해산을 반대하는 집회를 통해 다시 시위 전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굳어지고 있다.
태국에서 국왕은 한때 인간과 함께 사는 신(神) 또는 국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존재였다. 국왕을 비롯한 왕족을 가까이서 알현할 때 대부분의 태국인은 무릎을 꿇고 땅바닥을 기듯 다가간다. 총리를 비롯한 고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1946년 19살의 나이에 즉위한 푸미폰 전 국왕은 2016년까지 무려 70년을 재위했다. 더욱이 그는 생전에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어려운 국민들의 손을 잡고, 다양한 개발사업을 추진해 태국을 중진국 반열에 올려놓으며 국민의 추앙을 받았다.
현재 태국 국민 대다수는 그런 푸미폰 국왕 재위 기간에 태어나 성장하고 나이를 먹었다. 동시에 이들은 자연스레 국왕을 존경하라고 교육받았다.
이런 왕가 존중 문화는 왕실 모독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형법 규정까지 만들어 냈다. 태국 형법 112조는 왕과 왕비, 왕세자와 섭정자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는 경우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932년 절대왕정이 종식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됐지만, 국민의 존경과 사랑으로 포장된 '사실상의 절대왕정'이 유지된 셈이다.
그러나 푸미폰 전 국왕 서거 직후인 2016년 12월 왕위가 그의 아들인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 국왕에게 넘어가면서 군주제를 지탱했던 국민의 존경과 사랑이 예전 같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는 수차례 반복된 결혼과 이혼 등 와치랄롱꼰 국왕의 복잡한 사생활과 잦은 해외(독일) 체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4번째 부인인 현 수티다 왕비와 결혼한 지 두 달만인 지난해 7월 또 다른 여성을 '배우자'로 맞이하기도
또 와치랄롱꼰 국왕은 400억 달러(한화 약 45조8천억원)에 달하는 왕실 재산과 군대를 사유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더욱이 이전 세대가 경험했던 '국왕의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국왕의 행보는 그저 비판과 타파의 대상일 뿐이다.
진행자) 시위대의 요구는 뭔가요?
기자)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과 내각 총사퇴, 군주제 개혁과 헌법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도 방콕 시내 왕궁 근처 광장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열렸습니다.
진행자) 시위대는 군주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건가요?
기자) 그건 아닙니다. 로이터, AP 등 주요 매체는 시위 현장에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는데요. 대다수는 군주제 폐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견을 내지 않고, 총리 퇴진과 정부 개혁을 요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대신 왕실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국왕의 권한을 제한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태국 정부는 '긴급 칙령(emergency decree)'을 통해 5인 이상 집회 금지·국가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보도와 온라인 메시지 금지·총리실 등 당국이 지정한 장소 접근 금지 등의 명령을 발표했다.
방콕포스트는 "이날 역시 경찰이 물대포를 들고 현장에 나타났으나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며 "또한 5명 이상 집회 금지령에 따라 즉각 체포도 가능했으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태국에서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 퇴진과 왕실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지난 7월부터 3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앞서 쁘라윳 총리는 "시위가 거세진다면 야간 통행금지 시행도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CNN에 따르면 지난 19일 방콕 시내 왕궁 바로 옆 사남루엉 광장에서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최대 규모인 1만8000명(당국 추산) 이상이 참가한 시위가 열렸다.
이어 20일에는 시위대가 광장 바닥에 ‘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지, 그들이 우리를 속여온 것처럼 군주의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동판을 설치했다.
그러나 지난 7월부터 태국에서는 10~20대 학생을 주축으로 한 학생단체 ‘탐마삿과 시위 연합전선’을 중심으로 군주제와 정치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세다.
반정부 시위 주최 측은 또 SNS를 전세계를 향한 여론전의 수단으로 활용 중이다.
태국 정부에 대한 국제 사회의 압박을 끌어내겠다는 의도다.
이들은 해시태그로 '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WhatIsHappeningInThailand)을 달아 한국어를 포함해 다양한 문자로 군주제와 군부 통치를 반대하는 자신들의 명분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는 태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언론보도 금지'라는 비상 포고령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태국 반정부 시위대는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어를 포함한 다국적 언어로 자신들이 태국의 군주제와 군부 통치에 반대하는 주장과 근거를 알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공개한 한국어 포스터에 따르면,
이들은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지금 태국 국민들은 군부 독재 정권과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WhatIsHappeningInThailand)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세계 각국의 언어로 그들의 주장을 전달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는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 정권이 지난 2월 헌법재판소를 통해 야당을 강제 해산시키면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시위 현장에는 지도부가 없어도 시위대가 소형 확성기를 들고 차례로 발언하거나, 질서 유지와 긴급차량 통행 등을 위해 팔짱을 낀 채 공간을 확보하는 모습 등이 자주 목격된다.
'모두가 지도부'라는 인식이 확산하면 태국 정부의 반정부 시위 대응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티티뽄 팍디와닛 우본랏차타니대 교수는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에서 "반정부 시위는 소셜미디어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거리에서 해산시켜도 SNS에서는 그대로일 것"이라며 "또 지도부 인사들이 체포되면 새로운 지도부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국 왕실의 개혁을 바라는 반(反)정부 시위가 넉 달째 이어지는 가운데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지난 5일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다음 달 13일까지 5명 이상의 모임을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수만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태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태국의 반정부 집회는 지난 2월 젊은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야당인 퓨처포워드당(FFP)의 강제 해산으로 촉발됐고, 현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7월부터 다시 불붙었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군사정권에 맞서 ‘10·14봉기’가 있었던 지난 1973년에는 46명이, 탁신 전 총리를 둘러싸고 마찰이 있었던 2010년에는 90명이 사망하는 극한 대립이 불거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