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유보금을 늘리는 이유
주식발행을 통한 외부자금 조달이 비용이나 수익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경영 상황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자금 조달 목적을 설명하는 등 시장에서 검증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내부 자금을 사용하는 것이 투자 목적을 밝히지 않고 시장의 검증을 피하는 편한 방법이다
대기업들이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을 회피하는 더 직접적인 이유는, 매우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장학하고 있는 총수들이 자신들의 지분을 유지하기 위한 개인적인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주식을 발행하면 할 수옥 총수의 지분은 축소될 것이고, 경영권 장악도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장의 검증과 감독을 거치지 않아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자본주의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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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책을 읽으면서 기업들이 사내 유보금을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고, 이것이 기본적으로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이라고 얘기하지만 이에 대한 또다른 측면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책에서 나오는 내용뿐만 아니라 좀 더 기업의 입장에서 이야기와 사내 유보금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작성하는 포스팅임을 밝힌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2021년 재벌사내유보금 현황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2020 회계연도 30대 재벌사내유보금은 1045조1301억원"이라며 "코로나19 위기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를 기록하는 가운데 재벌사내유보금은 어김없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은 30대 재벌계열 상장사 전체와 자산총액 500억원 이상 비상장회사 개별 제무제표 전수조사를 통해 2020회계연도 사내유보금을 추산했다.
분석에 따르면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5개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지난해 말 기준 701조4571억원으로, 전년 동기 672조6888억원 대비 4.27%(28조7683억원) 증가했다.
30대 재벌의 ‘투기 부동산’도 천문학적 규모인 것으로 드러났다. 30대 재벌 비업무용 부동산(투자부동산) 보유 규모는 장부가액 기준 36조1694억 원을 기록했다. 장부가액은 취득원가에서 감가상각액을 제한 것으로, 실제 투자부동산의 시가 규모를 축소하는 문제가 있다. 토지 공시지가 역시 실거래가의 60~70%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30대 재벌의 투자부동산 시가는 최소 464조 원에서 542조 원까지 추정된다.
재벌 총수일가의 배당을 늘리는 추세도 계속됐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 순이익(개별기준) 15조6150억 원 중 무려 9조6200억 원을 배당했다. 더구나 지난 몇 년 동안 천문학적 규모의 자사주를 지속해서 매입·소각하고 있다. 2016년 이후 삼성전자가 소각하고 있는 주식은 60조 원에 달한다.
특히 현대중공업의 경우 2020년 연결기준 순이익 -7897억 원을 기록했으나 2614억 원을 배당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해 변혁당은 “주주 친화를 명분으로 한 대주주 친화책, 배당증액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은 승계를 앞둔 주요 그룹들에서 나타나는바, 기업이윤을 총수 일가 자신들을 위해 쓰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사내유보금은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을 합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꼬불쳐 놓은 현금'이라는 생각이다. 사내유보금 대부분은 현금이나 현금성 자산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이 이익을 내면 상당 부분 미래 이익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공장도 짓고 설비 투자도 한다. 이렇게 투자한 돈은 유형자산으로 잡히고 여전히 사내유보금으로 분류된다.
어떤 기업은 사업을 잘해서 흑자가 나는데도 일시적으로 현금흐름이 부족해 도산하기도 한다. 이른바 흑자도산이다. 이런 것을 막아주는 것이 사내유보금 중 사업을 위해 투자하지 않고 남겨놓은 돈이다. 부침이 심한 업종에 속한 기업일수록 사내유보금을 투자에 다 써서는 안 되고 유동자산 비중을 충분히 키워놓아야 한다.
근 정부가 2020년 세법 개정안을 통해 가족, 기업 등 개인 유사 법인의 과도한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사내유보 과세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개인 유사법인은 최대지배주주와 특수관계자가 80% 이상 지분을 보유한 법인을 말하는데,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비상장 중소기업의 절반가량이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제한적으로 이 법을 적용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에서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고 남은 '이익잉여금'과 자본 거래에서 생긴 '자본잉여금'을 합친 말이다. 사내유보금은 회계 기준에도 없고 상법에도 나오지 않는 용어다.
특히 이 중 상당 부분이 설비투자나 연구용역비로 이미 투자된 상태다. 다만 기업들은 이 중 일부를 단기금융상품이나 이에 준하는 현금성 자산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현금을 쌓아놓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재벌 ‘사내유보금’ 754조…기업들 사회적 책무 져야 <한겨레>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쌓는 것은 비난받을 일인가?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여기는 듯하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다수의 의원들이 사내유보금을 규제하는 법안을 내기도 했고, 그런 문제의식은 2014년 7월에 최경환 경제팀이 일정 수준을 넘는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이하 ‘환류세제’)로 일부 흡수되기도 했다. 기업 친화적인 보수정부조차도 지나친 사내유보금 축적을 기업-가계 간 소득불균형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는 뜻일 테다.
기업이 막대한 액수의 사내유보금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은 그저 이제껏 이윤을 많이 냈다는 뜻일 뿐이다. 여기서 굳이 ‘사내유보금’이라는 생경한 용어를 쓰는 것은, 보통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고 있는 오늘날의 기업은 개인과 달리 이윤을 주주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나눠주지 않고, 분배하지 않고 회사 안에 남겨두는 이윤이 사내유보금이다.
물론 그것은 실물투자, 금융투자, 현금보유 등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사내유보금은 그것이 나중에 어떻게 쓰이든, 그 ‘유래’를 가리키는 용어다. 예컨대 기업은 기계의 구매(투자)를 ‘사내유보금’으로 할 수도 있지만, 회사채나 주식을 발행해서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과도한 사내유보금에 대한 문제제기의 핵심은 ‘①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거두고 있으나 ②이를 주주에게 배당하지도 않고 사내에 유보하면서도 ③정작 투자에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의 한국 경제에서 누가 이것을 부정하겠는가?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환류세제’는 바로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보면 된다. 이 제도는 기업의 이윤 중에서 배당으로 분배되거나 신규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순수한 의미의 사내유보에 대해 추가적으로 과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제대로만 된다면 기업에 사내유보의 비용을 높임으로써 배당이나 투자에 좀 더 힘쓰게 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쌓는 것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노동자에게 적절한 노동환경과 임금을 보장해주는 등의 책임만 다한다면 말이다. 오히려 사내유보금을 투자재원으로 삼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외부차입에 비해 안정적인 성격이 있고, 단기적인 주가 상승 등에만 관심 있는 외부자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장기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