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중에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며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찍어내는 실물 화폐의 가치를 뒤흔들 기미가 보이자, 한은이 부랴부랴 CBDC 발행을 준비하고 나선 것이다. 전망은 크게 엇갈린다. CBDC 도입시 비트코인 등 민간 암호화폐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과, 정 반대로 비트코인 가격이 뛰어오를 수 있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온다.
발권력을 지닌 각 국 중앙은행 입장에선 민간에서 내놓는 비트코인 등 신종 화폐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광범위하게 사용될 경우 기존 실물 화폐의 입지가 축소되고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한은이 CBDC를 발행할 경우, 디지털화폐의 원활한 시중 유통과 사용을 위한 중개기관이 필요할 것"이라며 "신한은행이 중개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디지털화폐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화폐 플랫폼에서 가상의 한국은행은 CBDC를 발행하고 중개기관을 통해 유통하며, 중개기관으로서 신한은행은 CBDC를 개인에게 지급한다. 개인과 가맹점은 발행된 CBDC를 활용해 조회·결제·송금·환전·충전할 수 있다. 시스템은 거래 안정성 확보 차원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형(거래별 데이터 관리)방식으로 구축됐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BIS가 조사한 전 세계 66개 중앙은행 가운데 86%가 CBDC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BDC와 관련된 실험 또는 기술 도입 전 검증 단계를 진행 중이라는 응답은 2019년 42%에서 2020년 60%로 크게 늘었다.
중앙은행들이 CBDC 도입에 관심을 갖는 배경으로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 꼽힌다. CBDC 발행 전에 가상화폐가 광범위하게 사용될 경우 법정화폐의 입지가 축소되고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난 지원금을 신속하게 지급해야 할 필요가 늘어난 것도 CBDC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현금’으로, 현재 도입에 가장 속도를 내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대규모 공개 시험을 하고 있다. 기축통화로서 위안화의 지위를 높이려는 의도와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같은 기업이 지급결제 시장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정부의 우려가 맞물렸다.
대표적인 비트코인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CBDC는 모든 개인들이 중앙은행을 통한 거래를 허용해 현금, 기존 은행계좌, 디지털 결제 서비스 수요를 줄일 것”이라면서 “CBDC가 발행되면 그 즉시 확장성 없고, 저렴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은 암호화폐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먼저 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며 ‘디지털 달러’에 신중한 미국도 보스턴연방은행이 MIT와 협업해 수년 전부터 가상 CBDC를 개발하고 테스트 중일 만큼 준비는 철저하다. 캐나다·영국·일본·유럽연합(EU)·스웨덴·스위스 중앙은행도 작년 초 Fed와 CBDC 연구그룹을 꾸렸다.
하지만 악용 시 폐해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모든 거래기록이 국가기관에 집중되는 탓에 사생활 노출과 프라이버시 문제 해결이 필수다. 실물 화폐가 없어 자금세탁에 취약하다는 단점도 극복해야 한다.
특히 “CBDC는 ‘법화’(法貨)로서 발권력 및 강제통용력에 있어서 현재 통용되는 한국은행권 및 주화와 같은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즉 현재 유통되는 원화와 동일하게 ‘돈’으로서 교환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연구자들은 이런 분석 결과를 제시하면서 시종 CBDC가 ‘통화법상 제도로 인식되어야 할 법화’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결론 부분에서도 이들은 “종래의 은행권, 주화, 그리고 CBDC 모두 한국은행법에 따라 법화로서 발행하는 통화법상의 제도”임을 주장하면서 “법화의 공법상 제도로서 특수한 지위를 충분히 고려해 관련 법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는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디지털 화폐를 제대로 발행할 책임이 있다”면서도 “첫 번째 디지털 화폐 발행국이 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달러가 (기존보다) 더 빠르고, 안전하고, 저렴한 지불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가 없어 주로 현금을 사용하는 저소득층에게 디지털 달러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옐런 장관은 디지털 달러의 필요성은 강조하면서도 비트코인에 대해선 “투기성이 높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잡지 포브스는 “옐런은 최근 비트코인 열풍에 대한 답을 ‘디지털 달러’라고 선언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통화로, 가상화폐와 달리 기존의 화폐와 동일한 교환 비율이 적용돼 가치변동의 위험이 없다"고 설명.
반면 박성준 동국대 교수(블록체인연구센터장)는 "이는 암호화폐를 '화폐'라고 보기 때문인데, 비트코인은 원래 결제 수단이 될 수 없고 그게 목적도 아니다"며 "현재 법정화폐 외에 지역화폐가 쓰이는 것처럼 CBDC가 발행된다고 해도 비트코인은 지역화폐처럼 쓰일 수도 있다"고 전망.
미국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각) "비트코인이 거래 메커니즘으로 널리 쓰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종종 불법 금융에 사용된다는 점이 걱정된다"면서 "비트코인은 거래를 수행하기에 극도로 비효율적인 수단이며, 그 거래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비판.
다만 실제 CBDC의 등장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주요 국가 중 실제 도입을 위한 적극적 논의가 이뤄지는 국가는 스웨덴이 유일하다. 또 CBDC 도입을 위한 각종 법적 제도도 미비한 상태다.
정순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CBDC가 시장에서 법화로서 성공적으로 유통이 되고 불법적인 자금 용도로 사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CBDC의 이전에 관해 법률 등에 명확하게 규정하고, 압류, 강제집행, 몰수 등 민사집행과 형사집행 시스템이 CBDC에도 적용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CBDC 설계 시부터 이러한 점을 고려해 제도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비트코인과 달려간 적정 가치를 매기는 일종의 환율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비트코인의 변동성을 잡고 결제 통화로서 가치를 높인다면 비트코인이 가상화폐로의 지위를 공고히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CBDC와는 별개로 비트코인 시장은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금융 수준이 낮은 EMDEs 중앙은행들은 선진국보다 CBDC 도입 의지가 강하다. 이들은 디지털 화폐가 탈(脫)달러화, 재정·통화정책 실행의 수단, 현금유통비용 감축 및 결제시스템의 대안으로 활용되는 등 여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는 CBDC 발행을 통한 중앙은행의 통화주권 유지 및 민간 디지털화폐의 광범위한 상용 가능성에 대응한 공적 기능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CBDC 발행 형태 중에서는 민간기관이 참여하는 혼합형 CBDC(hybrid CBDC) 도입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화폐 관련주들은 현재 미국과 중국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에 적극 나서면서 테마주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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