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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았던 나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혹은 정말 저게 진실일까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편이었고, 그래서 중동과 이슬람이라는 세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가졌다.

내가 읽은 책들 중에 꽤나 중동과 관련된 것들이 많고, 특히 내전과 독재, 인권에 관련된 관심을 바탕으로 그런 소재들의 배경과 이슈설명이 중동국가를 대상으로 작성된 것이 많았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서 다른 종교들과 비교해 일상에서 낯선다는 점을 빼면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면서도 중동 그 자체를 그리고 이슬람 세계를 정치학적으로 사회적인 관점으로 국가단위로 분석하거나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최소한의중동수업 이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특정 이슈적인 차원에서 중동국가와 지역 그리고 이슬람을 다루는 것을 벗어나 정치적, 역사적, 외교적 차원에서 중동국가와 지역을 분석하고 단편적으로 흩어졌던 이슈들을 결집해서 그 배경과 원인 그리고 현재의 시점에서 가장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읽었던 중동 관련 책 중에서 가장 잘 정리되었고, 추가적인 질문이 꼬리를 물지 않을만큼 명료한 서술이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중동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알아야할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 혹은 너무 복잡해서 정리가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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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산유국의 축구 투자가 권위주의 정권의 우민화 정책용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시민의 관심을 축구로 돌려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의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축구는 공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는 만큼 문턱이 낮은 종목이므로 우민화 수단으로 제 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축구에 일광하는 중동 시민은 경기에 적용되는 엄격한 규칙과 공정한 경쟁에 대해 환호한다. 권위주의의 억압 아래서 사는 이들은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법치 대신 경기 속 정의를 만끽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누구든 물을 어기면 예외 없이 벌칙을 받는 모습에 중동 시민은 세상의 부당함을 잠시 잊고 살아 있는 정의에 안도하는 것이다. (P.91)

중동에서 축구가 왜 인기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통찰력을 느꼈던 부분. 과거 우리나라에서 독재시절 야구리그가 만들어진 이유와 흡사하다는 생각. 축구 그 자체가 우민화의 수단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에 동일한 환경과 규칙 그리고 공정한 경쟁에 환호한다는 말이 더욱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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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1.270명을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에게 당면한 과제는 부패(26%), 빈곤과 실업(22%), 가자 지구 봉쇄(20%), 이스라엘의 점령(16%),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 분열(12%) 순이었다. 이스라엘과의 대결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다.

'이스라엘의 점링'이란 응답은 3년 전보다 14% 포인트가 떨어졌지만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 분열'이라는 응답은 8% 포인트나 올라갔다. 응답자의 84%는 파타흐가, 72%는 하마스가 부패 했다고 답했고 58%는 하마스가, 53%는 파타흐가 두려워 비판할 수 없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뒤로하고 2020년 아랍 4개국이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한 아브라함 협정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절반 이상 (53%)이 자신의 지도부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 정치 불신과 박탈감으로 희망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은 독립국가 건설의 걸림돌을 팔레스타인 지도층이라고 본다. (P.109)

일부의 사람들은 내전과 빈곤이 그리고 부패가 만연한 국가에서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로 그 곳의 시민들을 탓하기도 한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가 곳의 시민들을 대표한다는 주장에 그것을 가자지구 사람들이 승인했을 것이고 테러에 대한 책임도 함꼐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폭력과 죽음으로 점철된 공간에서 옳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지지 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그들의 정신과 노력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이유다.

2021년 봄에 하마스 먼저 쏘기 시작한 4,500발 로켓이 과연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도왔을까? 아니다. 하마스는 매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선제공격이 불러올 이스라엘의 가공할 반격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렇다면 하마스의 로켓은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과 팔레스타 인계 거주권자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을까? 이 역시 그 반대다.

이스리엘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5개의 아랍게 정당은 2021년 총선에서 국 회의원을 10명이나 배출했다. 이스라엘 건국의 주축인 노동당의 7명보 다 많다. 이 중 아랍계 정당 하나가 반 네타냐후 연립정부 안에 포함 했다 이스라엘 정치사에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하마스의 로켓 발사는 역사적인 연립정부에 찬물을 끼얹었다. (P.115)

갈등을 부추기고 혐오가 만연하고 소통을 단절시키는 행위는 사실 결과라기 보다는 원인이고, 변화의 바람을 막고 대화의 시작을 막는 이들은 그 원인을 제공해주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본인들이 얻는 기득권을 강화하고 본인들의 문제를 합리화하기에 가장 적절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록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이야기 하긴 했지만, 이러한 정치적 현상은 우리나라에도 어느 곳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의 노력을 나의 이야기 보다는 상대방의 생각을 더욱 읽어야 하고, 공통의 문제인식을 찾아내 해결안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대화의 테이블이 모두가 앉는 것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다.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할뿐이라고 할지라도 착석하지 않는 이들에게 더욱 가중의 책임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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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당선자를 뽑지 않은 나머지 소수 의 견을 듣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편협한 선거주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P.127)

민주주의 문제를 언급할 때, 1순위 그룹의 의견만이 반영되어 나머지의 의견이 무시될 수 있다고 하지만, 민주주의 그 자체는 다수결의 원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먼저 동의한 것을 중심으로 나머지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하고 수정해나갈 것인에 대한 점이란 걸 이 책에서 말해준다. 이 책에 나온 인상깊었던 구절을 정리하면서, 비단 중동에서의 국가뿐만 아니라 정치 전반에 대해서 인사이트를 준다는 점에서 사실 이 책의 제목인 최소한의 중동수업의 최소한의 정치수업과 결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오바마 정부 주도의 2015년 이란 핵 합의로 이란 온건 개혁파가 힘을 얻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알아사드 정권 축출이 아닌 1SIS 의 격퇴를 선택하면서 이란 강경파의 영향력은 급부상했다.

러시아는 더욱 대담해져 군사 모험주의의 민낯을 숨기지 않고 우크라이나마저 침공했다. 미국 민주당 정부가 외면한 시리아의 인권과 보편 가치, 중동에서 힘을 얻는 비자유주의 질서 간에는 분명한 연결 고리가 있다. P.163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모든 국가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이 패권국인 미국을 통해 증명된다.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선택을 내려야 하지만 모든 것에 집중을 해야 하고 자신의 패권지위를 합리화 할 수 있는 그 선언들을 배반하는 순간 패권국의 지위를 탐내는 국가는 그 틈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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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이란혁명과 마찬가지로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을 아무도 예 상하지 못했다. 이전 이란혁명 글에서 살펴봤듯이 혁명은 원래 그렇다.

아랍의 독재는 프랑스 절대왕정, 제정 러시아, 이란 팔레비 왕정,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처럼 갑자기 몰락했다. 독재 정권 대부분은 특별한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붕괴한다. 공포정치 아래서는 정확한 여론이 존 재하기 어렵기에 독재자, 엘리트, 시민 모두가 서로의 속마음을 몰랐고 정권의 빈약한 토대를 가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의 안정은 소수 정권 엘리트의 억압과 통제로 쉽게 유지될 수 있다. 특재 정권에 가장 큰 위험은 겉으로 보이는 평온함을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데 있다. P.194

이 책을 리뷰하면서, 중동이 정치적 측면에서 독재와 시민 그리고 권력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매력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될만한 북한 독재정권에 대해서 직접적인 연구와 분석이 어렵다면, 중동의 독재국가 사례를 살피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될 거라는 점. 독재정권의 붕괴가 단순히 민주주의 길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 혁명은 갑작스럽고 어이없게 찾아온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주 작은 빈틈이 독재정권을 몰락시킬 수 있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독재정권 혹은 군부정권과 같은 폐쇄적인 정치시스템에서 우리가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하는지 다시 상기하게 된다. 대화와 교류의 단절로는 아무것도 바꿀수 없다.

혁명은 빈곤, 청년실업, 부정부패,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 확산 등의 촉발 요소가 합하면 서 우연한 기회에 극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민주화는 다르다. 민주화 이행에는 전문 직업주의 군부, 정권에 독립적이고 현실 정치 경힘이 풍부한 시민사회라는 요소가 필요하다.

튀니지와 이집트에는 비슷한 수준의 비즈니스 계층과 재야 단체가 존재했다. 그러나 튀니지 군부는 이집트 군부와 달리 정치 개입을 멀리하고 경제 이권을 장악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결국 민주화 연착륙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P.216

고등학생 시절, 아랍의 봄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 계기로 직접 튀니지를 방문할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현재 유일하게 그나마 민주주의가 안착된 나라가 튀니지라는 점에서 그 이유가 늘 궁금했다. 결국 시민사회가 정치적인 관심과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가져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부가 정치권력에 연루되거나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었다.

군부가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순간 혹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력이 누군가에게 주어진 순간 어쩌면 아주 먼길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군부는 특정 국가 혹은 집단이 적이 아니라, 국민들의 안전과 일상을 위협하는 모든 이들이 적이라는 점을 그리고 먼저 총부리는 겨누지 않는 한 절대 시민에게 총을 겨눠서는 안된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해보인다. (우리나라가 총기소지 불법인 국가여서 정말 다행이하는 생각이 더욱 자주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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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극단주의 추종 세력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극단주의와 테러리 즘에 관심을 둔 이들은 구미에 맞는 대화방을 선택해 동질감을 확인 한 후 사회를 향한 불특정 분노를 결집했다. 인터넷의 특성상 극단적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다수는 침묵을 지키거나 대화방에서 나가버리기 때문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극단적 소수만 남아 세상의 많은 사람 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현상을 '에코 체임버 echo chamber 효과'라고 하는데, 소리가 퍼지지 않고 되돌아오도록 만든 에코 체임버 혹은 반향실 내 소리는 갇힌 공간 안에서 증폭되고 왜곡 되기 마련이다.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대화방에서 온건한 입장은 밀려 나고 소수의 편협한 의견이 폭발하면서 더 폐쇄적이고 왜곡된 극단주의적 의견이 집단으로 생산됐다. P.247

중동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 책에서 나는 오히려 현재 우리나라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과 현실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은 매우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에게 극단주의가 심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사실 경제적인 불황의 상황에서 더욱 커지는 것 같다.

2019년도에 극단주의와 관련된 책 리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보다 2024년인 지금은 훨씬 더 심해진 듯 하다. 그 이유로 인터넷에서 쉽게 비슷한 생각을 찾는 이들과의 교류와 제한적이고 왜곡된 정보로 인한 편향성이지 않을까 싶다.

 

https://blog.naver.com/daily_ian/221639365372

 

[책읽기] 자신의 믿음에 미친 그들, 광신에 대하여 :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김태형 / 을유문화사

[책읽기] 자신의 믿음에 미친 그들, 광신에 대하여 :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김태형 / 을유문화사 기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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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인터넷 세상이 아닌 현실에서 오히려 예민한 주제와 생각들을 더욱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의무교육과정에서 이러한 논의방식과 대화들이 필수적으로 학습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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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당신이 얼마나 캐나다 사람 같은가가 아니라 캐나다에 사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입니다Its not how Canadian you are, its who you are in Canada.

책의 마지막 쯤 나왔던 구절. 가장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인 캐나다에서 공공 캠페인에 적혀있던 문구. 어느 나라 사람이냐 보다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고, 어떤 종교를 가진 사람인지 보다는 어떤 배움과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인지에 집중하고, 다름에 불편함을 느끼기 보다는 같음에 공감할 줄 아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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