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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는 인구 280만명, 국토 면적은 남한의 3분의 2 정도인 유럽 발트해 연안 작은 나라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 등 강대국을 상대할 때 소국(小國)답지 않은 의연한 외교정책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럽연합(EU) 27국 중 가장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선 나라가 리투아니아였다. 2021년에는 중국의 경제 보복 위협에도 대만 대표부를 개설했다.

다음 달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빌뉴스에서 열린다. 윤석열 대통령도 ‘파트너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하는 자리다.

다음 달 11일부터 이틀간 빌뉴스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는 벌써부터 세계 각국의 초미(焦眉)의 관심사다.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에 나서고, 바그너 그룹의 반란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입지가 흔들리며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와중에 열리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는 이 회의에서 F16 전투기 등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강화, 나토의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스웨덴의 나토 가입 문제, 또 대만해협과 인도-태평양에서 가중되는 중국의 위협 대응 같은 논의를 적극적으로 이끌 예정이다.

리투아니아는 18세기부터 러시아 제국의 압제에 시달렸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합병돼 극심한 정치적 탄압을 겪었고, 고유의 말과 글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현재는 러시아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와 그 맹방 벨라루스 사이에 끼여 일촉즉발의 군사적 위협을 받는다. 러시아는 리투아니아 내 친러 세력을 지원하면서, 과거 나치 협력자들이 지금 친서방파의 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국가와 협력 관계를 수립하고 발전시킬 권리가 있다. 대만 대표부를 설치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하나의 중국’ 같은 원칙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명백히 과도한 반응을 보였다. 이 때문에 대중 수출이 무려 80%나 감소해 큰 고통을 겪었다. 기업들의 노력과 리투아니아 경제의 높은 회복 탄력성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 다변화는 경제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와 중국에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

“서방의 지정학적 일부가 된 것, 즉 EU와 나토 회원국이라는 점이다. 덕분에 우리는 ‘집단 방위’의 안보 우산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아울러 러시아 에너지 자원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 사회에 파고드는 러시아의 허위 정보, 정치적 선전과 성공적으로 맞서 싸운 덕분이기도 하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대량의 무기와 지원금을 제공했다. 곡사포와 장갑차, 헬리콥터, 방공 미사일 시스템, 드론(무인기), 대공포, 자동소총과 기관총, 박격포 등 지원 총액이 10억 유로(1조4200억원)에 달한다. 리투아니아 국내 총생산(GDP)의 약 1.2%에 달하는 것으로, 지원국 중 GDP 대비 최대 규모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지정학적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모호한 중간 지대에 머물렀다. 소련 붕괴 이후 서유럽이 동유럽 국가들을 EU와 나토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 매우 짧은 시간에 말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독립 후 우리가 EU와 서방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빨리 이뤄진 덕분이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친러와 친서방을 오가다 우리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사이 창은 닫히고 말았다. 결국 오늘과 같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됐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3/06/27/OJBEBVGVCJERDNSKAZDL675N4Y/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3/06/27/AA7ZFIMGTNBNPFDU6M6QEZOY2U/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모두 구(舊)소련에 속했던 나라다.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이들 국가들은 서로 다른 길로 갔고, 이는 세 나라의 운명을 갈랐다.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가 특히 그 대척점에 있다.

리투아니아는 1990년 구(舊)소련에서 독립 후 서방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모델로 삼아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를 통해 14년 만인 2004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다른 발트해 연안 국가와 함께 EU와 NATO에 동시 가입했다.

당시 집권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를 ‘나토 동진(東進)’의 일부이자, 러시아의 지역 패권 복구 시도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리투아니아에 대한 군사적 위협 등을 해왔다.

리투아니아는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탈피하는 데 진력을 기울였다. 리투아니아는 소련 시절 구축한 행정 및 사회 기반 시설로 인해 러시아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뒤집기 위해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 전 대통령은 2009년 취임 직후부터 에너지 수입국을 다양화하는 노력에 나섰다. 또 2015년 유로화 사용을 시작하며 EU 경제권으로 완전히 통합, 러시아의 경제적 영향력에서도 벗어났다. 덕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두 달 만인 지난해 4월, 리투아니아는 EU 회원국 중 가장 먼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완전히 중단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다.

반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1994년부터 30년째 집권하며 친러 정책을 펼쳐온 벨라루스는 지금 ‘러시아의 종속국’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됐다. 2020년 기준 벨라루스의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의존도는 각각 90%와 100%에 달한다.

벨라루스는 안보 역시 러시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로로 자국 영토를 내어주고, 러시아 군용기의 자유로운 이·착륙도 허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5월 벨라루스에 전술핵까지 배치한다고 발표하며 ‘러시아 군사 기지화’를 공고히 하는 상황이다.

리투아니아

국명 : 리투아니아 공화국 (Republic of Lithuania)

수도 : 빌니우스 (Vilnius)

위치 : 중유럽 북부 발틱해 연안 북위 53-57도, 동경 21-27도

면적 : 65,300㎢(한반도의 약 1/3배)

인구 : 약 280만명('20년)

기후 :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의 교차 (7월 평균기온 17℃ / 1월 평균기온 -4.9℃)

민족 : 리투아니아인(83.7%), 폴란드인(6.6%), 러시아인(5.3%), 벨로루시인(1.3%), 기타(3.1%)

언어 : 리투아니아어(국어) (러시아어 통용)

종교 : 가톨릭(79%), 러시아정교(4.1%), 개신교(1.6%)

화폐단위 : 유로화(2015.1.1 유로존 가입)

주요 경제지표 (‘2020년 기준 : 리투아니아 통계청)

GDP : 480억 유로 / 1인당 GDP : 17,460유로

근로자 월평균 순임금(전체 경제) : 916유로(명목임금 1,440유로)

: 매년 이전 년도 보다 실질 임금이 '14~'18년도는 5~8%정도, '19년도는 11%, '20년도는 9%정도가 인상

실업률 : 8.5%('20년)←6.3%('19년)←6.1%('18년)

경제성장률 : -0.8%('17~'19년에는 평균 4%대 초반을 유지)

물가상승률 : 0.2%('20년)←2.7%('19년)←1.9%('18년)←3.9%('17년)

교역량 : 총 474억유로(수출 286억 유로, 수입 290억 유로, 무역수지 -4억 유로)

3. 경제 특징

리투아니아는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빠른 경제발전성과를 달성

‘발틱의 경제호랑이’로 불리우며 발틱 3국 중 최대 경제규모보유

2004년 EU가입과 함께 지속적인 경제발전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현대화된 통신 인프라, 고급인력 등을 바탕으로 첨단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하여 2009년 경제성장률이 -14.8%를 기록하는 등 극심한 경기 부진을 겪었으나,

2010-2011년 기간 경제성장의 주요 축인 수출과 내수가 회복세를 보이며 2010년 1.6%, 2013년 3.3%,

2014년 3.0% 등 EU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세를 달성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태에 기인한 주변 정세 불안으로 대 동유럽 수출이 감소하는 등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었으나, 2016-20년 기간 연평균 3.1%대의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

2015.1.1일부로 19번째 유로존 회원국이 되었으며, 향후 유로화를 바탕으로 안정적 환율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 최근 경제성장률

2020년 코로나 위기 이전 최근 3년간에는 매년 4%대 초반을 기록하다가 코로나로 마이너스 성장 기록

 

https://ko.wikipedia.org/wiki/%EB%A6%AC%ED%88%AC%EC%95%84%EB%8B%88%EC%95%84

리투아니아 공화국(리투아니아어: Lietuvos Respublika 리에투보스 레스푸블리카, 영어: Republic of Lithuania) 줄여서 리투아니아(리투아니아어: Lietuva 리에투바, 영어: Lithuania, 문화어: 리뜨바)는 북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다. 수도는 빌뉴스(과거에는 카우나스)다.

동쪽과 남쪽은 벨라루스, 서쪽은 발트해, 남서쪽은 러시아(월경지 칼리닌그라드주)와 폴란드, 북쪽은 라트비아에 닿아 있다.

발트 3국 국가 중에서는 인구와 영토가 가장 많고 넓다.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때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립했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점령 병합되었다. 1941년부터는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1944년 다시 소련군에 점령되면서 소비에트 공화국의 일원이었다.

1991년 8월 소련 쿠데타 실패 후 독립을 선언, 9월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독립국가연합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발트 3국의 최남부에 있다.

민족 구성은 리투아니아인이 83%이다. 전체 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식품 및 담배가 29.6%, 기계 장비가 18.3%, 섬유 의복·가죽 제품이 17%이다.

6세부터 11년간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1990년 종교교육을 도입하는 등 교육개혁을 단행했다.[2] 로마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리투아니아가 제일 북쪽에 위치한다.

현재 유럽 연합(EU),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다.

1990년 3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1년 1월 소련군이 리투아니아를 침공하여 13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하였으나, 리투아니아는 1991년 9월에 독립했고 1991년 9월 17일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유엔에 가입하였다.

현재 리투아니아는 반러시아적인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리투아니아

https://namu.wiki/w/%EB%A6%AC%ED%88%AC%EC%95%84%EB%8B%88%EC%95%84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로 가는 길목에 있는 리투아니아 제4의 도시인 샤울랴이에 '십자가 언덕'이 있는데 이 십자가 언덕은 매년 수만 명이 찾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다.

십자가 언덕은 18세기에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에 의해 분할당했던 시절에 사람들이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한 것에 유래됐고, 소련 치하에 있던 시절에 민족의 성지로 꼽히기도 했다

리투아니아 독립 직후인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고 소련 시절 독립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십자가 언덕은 종교적 힘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압제의 권력과 투쟁한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http://dl.kotra.or.kr/pyxis-api/1/digital-files/c16960f0-09fd-018a-e053-b46464899664

마. 대외관계

리투아니아는 1991년 독립 이후 200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및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에 가입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등 독립국가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국가군과 인접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외교 기조를 유 지하고 있으나, 러시아와는 외교적 마찰이 빈번하다.

리투아니아의 탈냉전 후 서구 편입

ㅇ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리투아니아는 1994년 초 구소비에트연방 국가로서는 최초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신청했다. 1999년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제1차 동구 확대 때는 리투아니아의 가입이 수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투아니아는 회원국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2002년 11월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중·동구 6개국과 함께 가입이 승인됐고, 2004년 3월 정식 가입하게 됐다. 리투아니아 병력 규모는 총 1만 3,510명 수준이며, 조크냐이 공군기지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 전투기가 배치돼 있다.

2003년 초 미-영 주도의 이라크전 당시 국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리투아니아는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비세그라드 4개국 및 유럽연합(EU) 신규 회원국들과 함께 미국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프랑스, 독일 등 구(舊)회원국들과의 갈등을 야기했다

ㅇ 유럽연합 가입

 

1995년 리투아니아는 유럽연합 회원국 가입을 신청했지만, 유럽연합 가입 협상 대상국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1999년 12월 유럽연합 헬싱키 정상회담에서 가입 협상 대상국으로 승인된 이후 협상이 가속화됐다. 리투아니아는 2002년 가입 승인을 거쳐 2004년 5월 중·동구 7개국 및 지중해 2개국과 함께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리투아니아는 유럽연합 가입 이후 2004년 11월 회원국 가운데 최초로 유럽연합 헌법조약을 비준하는 등 원칙적으로는 유럽 통합에 적극적인 편이다. 하지만, 조세 단일화 등 자국이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는 분야에 있어서는 통합에 소극적이다.

지난 2004년 5월 유럽연합에 가입한10개국 중 사이프러스를 제외한 중·동구 7개국 및 몰타(Malta) 등 8개국과 함께 리투아니아에도 2007년 12월 21일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이 확대 적용됐다. 이로써 2007년 12월 말 유럽연합 회원국 22개국을 포함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총 24개국에 이르는 협약 발효 국가 간의 국경 검문 검색이 철폐됐다

ㅇ 유럽 관계

리투아니아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안보 확립을 도모하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유럽연합 인근 국가의 경제 및 인프라 통합 강화 등 유럽 확대 추세에 긍정적인 입장이며, 대(對)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유럽연합의 통합 에너지 정책 추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편, 리투아니아가 2015년 1월부터 유로존에 가입함에 따라 유럽국가들과의 협력 증진이 기대된다.

2015년에 제·개정된 여러 EU법령이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돼 리투아니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5월 1일부터 EU 통합관세법 개정법이 시행돼 기존 8단계의 세관 절차가 3단계로 간소화되고, AEO(Authorized Economic Operator) 획득요건이 개정될 예정이다. 또한, 2015년 12월 3일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016년 9월까지 예정됐던 양적완화 조치를 최소 2017년 3월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유로화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ㅇ 러시아 관계

2004년 말 리투아니아가 우크라이나 민주화 운동을 적극 지원했고, 2006년 7월 러시아 국영 송유관 운영업체의 대(對)리투아니아 원유 공급 중단 등으로 인해 리투아니아와 러시아 관계는 경색됐다. 2006년부터는 노동당과 질서정의당 등 친(親)러시아 성향 정당들이 연정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러 관계가 더욱 소원해졌다.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Molotov·Ribbentrop Pact,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 소련의 리투아니아 침략의 발단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리투아니아가 소련 영토로 편입되자,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소련군을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인식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군용기로 리투아니아 영공을 침범하는 등 러시아가 리투아니아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2015년 11월 파리테러사태 이후 시리아와 IS에 대한 러시아와 EU간 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러시아의 위협은 조금이나마 진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ㅇ 중부유럽 등 인근국과의 관계

리투아니아는 발트각료협의회와 발트연안국협의회, 노르딕발트각료회의 등 인근 발틱 및 북구 국가들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인접국인 폴란드와는 14세기부터 왕실 간의 결혼을 통해 연합왕국을 형성\했으나, 1918년에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에는 영토 및 소수민족 문제가 양국 간의 긴장 요소로 작용했다. 1918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독립 당시 폴란드 영토에 속했던 빌뉴스 지역이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료와 함께 소비에트연방으로 편입됐다가, 1990년 리투아니아 독립과 함께 리투아니아로 귀속됐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빌뉴스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폴란드 소수민족에 대해 리투아니아식 성명 표기와 폴란드어 학교 폐지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폴란드 소수민족과 폴란드 정부는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ㅇ 아시아와의 관계

리투아니아는 한국, 일본 등의 국가와 경제 협력 강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2007년 아키히토 일왕이 리투아니아를 공식 방문했다. 2014년 2월에는 그리바우스카이테 대통령이 방한해 투자, 무역 증진을 위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https://stock.mk.co.kr/news/view/99022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이 18일 방한 중인 마리우스 스쿠오디스 리투아니아 교통통신부 장관을 각각 만나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원 장관과 스쿠오디스 장관은 이날 면담에서 교통 정책 및 모빌리티 혁신 비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양국 정부 간 교통 인프라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국토부가 전했다.

스쿠오디스 장관은 "리투아니아는 해상교통 개선과 핀란드-발트 3국을 연결하는 철도 프로젝트 등 다양한 교통인프라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와 정부 간 경험·노하우 공유를 요청했다. 원 장관은 리투아니아가 구체적인 사업정보를 공유한다면 공공기관과 건설 기업이 인프라 사업에 참여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http://openknowledge.kotra.or.kr/handle/2014.oak/28912

경제 동향

ㅇ 리투아니아는 2015년 1월 1일부터 유로존의 19번째 회원국으로 편입됐다. 2004년 유럽연합(EU) 가입 이후에도 11년간 사용해온 자국 화폐 리타스 대신 EU의 통화동맹 체제에 들어온 것이다. 이로써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등 과거 러시아 영향권 아래 놓여있던 발트해 3국이 모두 유로존으로 들어가게 됐다

- Labas rytas(라바스 리타스): 안녕하십니까? (오전)

- Gera popiet(게라 포피에테): 안녕하십니까? (오후)

- Malonu(마로누): 만나서 반갑습니다.

- Labai ai(라바이 아츄): 감사합니다.

ㅇ 사증면제협정

- 한국은 리투아니아와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관광의 목적으로 사증 없이 90일간 리투아니아 내에 체류할 수 있다.

- 단, 사증면제협정은 취업 또는 재화를 벌기 위한 목적의 입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ㅇ 대부분의 상점, 식당, 호텔 등에서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다. Amex의 경우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Visa, Master Card의 경우 사용이 가능하므로 카드 사용을 생각하고 있는 경우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용 시에는 한국과 같이 서명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Pin 넘버(4자리 비밀번호)를 누르게 되어있는데, 사전에 카드회사를 통해 이를 확인하고 오는 것이 좋다

 

* 리투아니아, 이름은 어렴풋이 들어봤을지라도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수도는 또 어딨는지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을 것 같다. 나도 이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신경써보지 못했던 나라였다. 새로운 파트너 국가로 리투아니라를 맡게되면서 조금씩 공부를 하고 현지 담당자들과 회의도 진행했었다.

* 1991년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면 불과 32년이 지난 것인데, 이 나라는 유럽연합, 경제개발협력기구,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까지 모두 가입에 성공한 나라다. 이 점에 있어서 난 소름끼치는 기분이 들었는데, 대단하다는 느낌과 놀라움이 동시에 느껴진 것이다. 정치외교적, 경제적, 군사적인 측면에서 300만도 되지 않은 인구수를 가지 구 소비에트 연방국가가 이토록 빠른 결단력을 가지고 위 기구들에 가입을 추진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 최근 국내 신문사와 이루어진 리투아니아 대통령의 인터뷰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가 국익 측면에서 취해야할 외교적 스탠스를 가장 적절히 취하고 있는 국가가 아닌가 싶었다. 확실한 노선을 정하고 그 노선으로 인해 타격을 받게 될 경제적인 분야에 있는 탄력성을 갖추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

* 내가 맡게 될 프로젝트의 주제가 위의 내용들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을 것이겠지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현지 측 담당자와의 소통이 너무 적극적이었고 협력도가 매우 높아, 나도 좀 더 욕심이 나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고 더 자주 지속적으로 공부해야겠다.

#리투아니아 #나라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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