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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황

수도 : 사라예보(약 52만명)

인구 : 326만명

면적 : 5만 1209㎢ (한반도의 약 1/4)

종교 : 이슬람교(40%), 세르비아 정교(31%), 로마 가톨릭(15%), 기타

민족 : 보스니아계(48%), 세르비아계(37%), 크로아티아계(14%), 기타

국가성립 : 92.3.1. 구유고연방에서 독립

※ 92.5.22. UN가입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Bosna i Hercegovina /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남유럽 발칸 반도에 위치한 국가이다. 수도는 사라예보이다

보스니아어(보슈냐크어),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국호는 공통되게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Bosna i Hercegovina /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이며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라는 의미이다

* 그래서 보통 BiH로 줄여서 종종 사용한다

그러나 나라 자체는 이 두 지역에 걸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또다시 나뉜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지방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은 민족 및 종교 구성으로 구분된다 생각하면 편하다

스릅스카 공화국(Република Српскa / Republika Srpska: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Федерација Босне и Херцеговине / Federacija Bosne i Hercegovine: 보슈냐크계+크로아티아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은 정치 체제와 산하 행정구역 구성 방식도 서로 다르다.

스릅스카(Српска, Srpska)라는 명칭은 세르비아인을 가리키는 어근 'Срб(Srb)'에 접사 '-ска(-ska)'가 덧붙은 것으로, '세르비아인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정치 체제는 대통령 중심제에 중앙집권제이고, 지방은 과거부터 있던 주(canton)를 해체하고 자치권이 없는 행정구역으로만 구성되어있어서 지방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선거 때는 대통령과 단원제 의회 의원을 선출한다.

따라서 세르비아계는 대통령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통령과 스릅스카 공화국 대통령 두 명을 선출하는 셈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대표할 뿐 세르비아계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것은 스릅스카 공화국의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구성국이었던 1990년의 정치 체제를 이어받아 세르비아계, 보슈냐크계, 크로아티아계가 각각 대통령 1명과 상원의원 5명을 뽑으며, 이들이 대통령 위원회(3명)와 상원(15명)을 구성해 국가를 대표한다.

하원은 인구 비례에 따라 의원 42명을 선출[17]하여 이들이 각료이사회라는 이름으로 내각을 구성하고 각료이사회 의장이 총리, 부의장이 외교장관을 맡는다.

그러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중앙 정부의 입법권 및 인사해임권은 대통령과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스니아 평화협정이행 국제사회 고위 대표부'(OHR)에 있다. 즉, 온전한 주권 국가로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각 자치정부에 과도한 권한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통합된 국가로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쉽지 않은 상태이다. 국제사회에서는 각 자치정부에 부여한 권한을 통합된 연방정부 형태로 이양하는 것을 추구하지만, 2010년에 열린 총선에서도 또 독자주의를 추구하는 쪽이 되면서 통합으로 가는 길은 멀다. 특히 이슬람 쪽보다는 오히려 세르비아계 쪽에서 결사반대하는 양상이다. 이들이 주요 세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스릅스카 공화국은 분리독립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2016년에 EU가입을 신청했고 2016년 7월 31일에 EU와의 협정도 통과되면서 EU가입가능성도 커지고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길도 커졌다. NATO 가입은 세르비아계들이 가입 대신 군사적 중립을 주장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찬성상태이다. 북마케도니아의 NATO 가입 다음으로 공식 가입 후보국에 오른 상황이라 유력시되는 국가이다.

당장 스릅스카 공화국의 정치권 내에서도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독립선언을 하면 또 다시 전쟁이 터질까봐 감히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크로아티아는 스릅스카 공화국이 독립하면 군대를 파견해서 저지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고, 세르비아도 크로아티아가 그러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유사 시 스릅스카 공화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무슬림 보슈냐크인과 연합중이라는 크로아티아계도 세르비아계가 떨어져나간다면 자신들 또한 따로 독립을 추진해나가려고 하고 있다. 일간의 인식과 달리 현재 보스니아내 크로아티아계도 지금까지 해온 무슬림과의 연합에 대해 불만이 점차 커지는 중이며 기존의 기존의 1국가 2체제에서 1국가 3체제를 원하고 있다.

미국은 *데이턴 협정의 개정을 통해 통합 연방국가로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는 입장이지만, 그러면 전쟁이 다시 일어날까봐 협정의 개정을 원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입장도 일단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의 도시인 데이턴에서 체결된 평화협정. 정식 명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의 평화를 위한 기본협정(General Framework Agreement for Peace in Bosnia and Herzegovina). 도시의 이름을 따서 데이턴 협정으로 부르며, 이 협정을 체결하면서 보스니아 전쟁이 종결된다.

2021년 12월 10일 스릅스카 공화국 의회에서 공화국이 보스니아의 군사, 치안, 사법, 경제 체제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공화국 헌법 개정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사실상 스릅스카 공화국의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한다는 소리라 공화국 내 야권에서는 전쟁을 부를 수도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서구권에선 데이턴 협정을 들먹이며 제재를 할 수도 있는 상황. 일단 보스니아 헌법재판소를 통해 뒤집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슈냐크인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교, 세르비아인들을 중심으로 세르비아 정교회, 크로아티아인들을 중심으로 가톨릭을 믿는 비중이 거의 비슷한 편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오스만 제국 시절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비중이 가장 많고, 그 외에는 정교회 아니면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보스니아 전쟁이 발발하던 1992년부터 전쟁이 끝난 지(1995년 12월 14일) 12년이 흐른 2008년까지 5,005명이 불발 지뢰를 밟고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을 정도라고 하며 심지어는 보스니아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때에 이게 지뢰인지도 모르고 산이나 들에서 주운 것으로 추측되는 불발 지뢰를 갖고 노는 보스니아 어린이들의 모습이 서방의 한 사진 작가에 의해 찍혔을 정도였다. 여행와서 며칠 지내다 보면 다리의 일부가 없는 장애인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여행자는 현지인의 발길이 뜸한 장소를 가급적 가지 않는 게 좋다.

보스니아에 있는 지뢰는 대부분 세르비아가 설치한 것이다, 그것도 보스니아 전쟁 말기인 1994년 12월부터 1995년 10월까지 설치했다.

세르비아는 1994년 10월부터 NATO(미군)의 공습을 받으면서 수세에 몰렸고, UN에서도 세르비아군한테 중화기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러자 세르비아가 유리하던 전황이 순식간에 뒤집혔고, 1994년 12월부터 세르비아계 스릅스카 공화국과 크로아티아 영내 크라이나-세르비아 공화국은 미군과 크로아티아군의 총공세를 막아내느라 힘에 부치고 있었다. 그때 라트코 믈라디치의 명령으로 세르비아계 영역을 따라 지뢰를 대거 설치한 것.

유럽에서는 드물게 3가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국가다. 아직도 모스타르나 사라예보 같은 대도시에서는 크로아티아계의 가톨릭 교회, 세르비아계의 정교회, 보슈냐크계의 모스크가 공존한다.

보스니아 전쟁은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에 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1992년 4월 6일부터 1995년 12월 14일까지 발발했던 전쟁이다.

20세기 후반 역사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세계에 상당한 충격을 준 전쟁으로, 400만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이들이 난민으로 전락했고 40%의 집들이 방화와 폭격 등으로 초토화되었다. 이 전쟁으로 25∼30만명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되나 아직도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전쟁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가 전투가 아닌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대량학살로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붕괴·분열 과정에서 가장 잔인한 전쟁이 벌어진 곳은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도 크로아티아도 아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였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보스니아가 최약체였고, 어느 정도 국내 민족 구성이 지역을 단위로 경계선을 그어놓고 있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북마케도니아와 달리 보스니아는 이슬람(보슈냐크계) - 가톨릭(크로아티아계) - 정교회(세르비아계) 신자들이 한 지역 내에서도 뒤섞여 통혼 혼혈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들을 구분하는 단위가 바로 종교였다. 즉, 종교를 배경으로 민족이 쪼개져 버린 것이다. 이런 유고전의 특수성 때문에 보스니아 전쟁은 초기부터 종교 전쟁으로 흘러가, 자기 종교가 아닌 타 종교 인원들에 대한 집단 학살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전의 분쟁 지역이었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각각의 분쟁 양상은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슬로베니아는 민족 분포가 각각 슬로베니아계(90%)로 세르비아계의 비율이 적었으며, 크로아티아의 경우 크로아티아계(89%)가 다수였지만 세르비아계도 소수 정도나마 분포하고 있었으면서도 두 민족 간의 주거 지역도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어 전쟁의 성질이 지역 내 민족 분쟁보다는 사실상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의 전선 쟁탈전이었다.

이와는 달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교를 믿는 보슈냐크인,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이라는 세 민족종교집단이 일정한 주거 지역이 없이 내부적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서 분포하고 있었다. 보스니아의 분리 독립에도 보슈냐크계와 크로아티아계는 독립에 찬성했으나 세르비아계가 반대하면서 분란이 격화되었다.

*여기서 독립은 유고연방에서의 독립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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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긴장이 고조되어가던 1992년 1월 9일 세르비아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인 공화국을 선포했고

1992년 2월 29일부터 3월 1일, 이틀에 걸쳐 연방 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의 분리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세르비아계가 투표를 보이콧한 가운데 전체 투표율 64%, 독립 찬성 99.7%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근거로 3월 3일 보스니아 인구의 2/3를 차지하던 보슈냐크계와 크로아티아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을 선포하며 유고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자 나머지 세르비아계가 이에 반발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3월부터 4월까지 각 지역에서 세 민족 간 소규모 충돌이 일어난다.

마침내 운명의 4월 6일 미국과 유럽 공동체(EC, 이후 유럽 연합)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보스니아의 연방 이탈이 사실상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되자 이와 동시에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하면서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라도반 카라지치는 미국과 유럽 공동체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독립 승인을 확인하고, 4월 6일 14시(현지시간) 연방주도국인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지원 하에 세르비아 접경 도시인 팔레(Pale)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인 공화국의 이름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8월 12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뗀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전쟁 초반에는 크로아티아계와 보슈냐크계가 함께 세르비아계에 대항하는 양상을 띄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크로아티아계와 보슈냐크계 역시 각자 장악한 지역의 통제권과 전쟁 범죄로 서로 대립하게 되었고, 자체적인 공화국인 헤르체그보스니아 크로아티아인 공화국(Hrvatska Republika Herceg-Bosna)을 수립하고 궁극적으로 크로아티아와의 통일을 노린 크로아티아계와 이를 거부한 보슈냐크계가 서로를 공격하면서 상황은 더욱 막장이 되었다.

크로아티아계 지역을 노리던 크로아티아 역시 보슈냐크계에 대한 지원을 끊고 헤르체그보스니아를 지원해 보슈냐크계를 공격하였다. 결국 보다못한 미국의 압력으로 크로아티아가 굴복해 1994년 7월 워싱턴 협정과 스플리트 협정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이 수립되면서 보스니아 전쟁의 하위 전쟁인 이 '보스니아-크로아티아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1992년부터 미국, 영국 등 서방세계 NATO 가입국의 주도로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신 유고 연방) 세르비아 공화국에 대한 단계적인 제재가 가해졌다. 신 유고 연방에겐 경제 제재와 무역 금수 조치가 단행되었고, 심지어 UN에서도 신 유고 연방에 대해 사실상 회원국 자격을 박탈하면서 세르비아를 비롯한 신 유고 연방은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말았다

우세한 여론을 등에 업고, NATO가 작전명 '딜리버레이트 포스'(Operation Deliberate Force) 로 명명된 세르비아계에 대한 전면 공습을 개시했다. 1995년 8월 30일 ~ 9월 20일까지 NATO 소속 항공기들은 사라예보 일대에 배치된 세르비아계 민병대의 야포 진지와 물자 집적소, 통신시설을 집중 폭격했으며 세르비아계 스릅스카 공화국의 핵심 시설도 덩달아 폭격의 대상이 되어 이로서 스릅스카 공화국의 진격은 저지당했다. 이에 세르비아계는 매우 당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기존에 NATO군이 소규모, 방어적 위주로만 작전을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을 '기만자'라고 맹렬히 비난하며 세르비아 편을 들었으나, 사라예보와 고라주데에서 벌어진 참상으로 인해 반전된 여론에 밀려 세르비아에게 등을 돌렸고 세르비아인들은 최소한의 인도적 한계도 지키고 있지 않다며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결국 1995년 12월 14일, 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턴에서 역사적인 데이턴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계승되어 독립국으로서 인정되었으나, 각각 영토를 절반씩 차지한 세르비아계 스릅스카 공화국과 크로아티아계-보슈냐크계 연합의 두 세력이 한 연방 내에서 공존하는 식으로 합의되었다.

대통령직은 세 민족이 돌아가며 맡게 된다는 협정 내용은 결국 갈등의 근본 원인인 민족 분쟁의 씨앗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후 1996년 3월부터 사라예보에서 스릅스카 공화국군이 철수하였고, 이를 관리 감독하기 위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UN 감시이행군과 러시아군이 공동 주둔하게 되었다. 러시아군이 별도로 추가된 것은 세르비아계의 요청으로, 협정상 보장에 따라서 러시아군이 세르비아계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 것.

이 전쟁에서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보슈냐크계 모두가 민병대를 조직해서 서로 잔혹하게 싸웠다. 확인된 민간인 희생자의 약 80%가 보슈냐크인이지만, 크로아티아인들이나 보슈냐크인들도 세르비아인과 서로에게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구유고슬라비아연방 시절 가장 낙후된 농업국 중 하나였다. 2009년 기준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주요 수출품은 건설 관련 재료와 장비이다. 그 다음은 제조업과 의류산업이라 할 수 있다.

이 국가는 상당한 산림지역을 보유하고 있다. 전 국토의 39%가 산림지역이다. 목초지와 농경지도 비슷한 비율로 존재하는데 비율은 39%이다. 농업에서 생산되는 주요 생산물은 옥수수, 밀, 보리 등의 곡류이다. 과일 등의 과수원도 운영하여 사과, 올리브, 포도 등을 생산하고 있다.

경공업, 제조업 등이 발달하여 시멘트, 강철, 알루미늄 등의 자재와 면직 물등의 섬유, 펄프 등의 재지류를 생산하고 있다. 제조업인 일반기계와 전자산업 부분에서 텔레비전과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식품업에서는 포도주, 치즈, 설탕이 생산된다. 지하자원은 보크사이트, 철광석, 대리석, 수은 등이 존재하며 석탄이 가장 유명하다.

한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경제는 구'유고연방국가'들과의 전쟁, 내전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전쟁으로 산업시설은 80% 이상이 파괴되었으며, 농지는 황폐화되었다. 2005년에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어서 실업률이 45%에 달했다. 같은 시기 빈곤률은 25%였다.

‘1국 2체제’ 특이하며 취약한 연방

오스만 제국의 터키의 지배하에 놓였다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원으로 영토를 탈환하고,

1918년 유고슬라비아의 주가 되었으며,

1946년 북부의 보스니아와 남부의 헤르체고비나지방이 합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일원이 되었다.

다민족국가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도 1992년 2월 29일 독립 국민투표를 통과하였다. 앞서 1991년 10월 보스니아 회교도들과 크로아티아인들이 손을 맞잡고 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어 1992년 3월 국민투표에서 99.4% 찬성으로 이를 확정했다.

그러나 보스니아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은 보스니아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참가 자체를 거부했다. 결국 공화국 거주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 세력 간 유혈 민족분규가 발생하여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내전기간 동안 20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100만 명의 이상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1995년 11월 내전 3개 당사국 대통령들이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공군기지에 모여 내전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에 가조인한 뒤, 1995년 12월 14일 파리에서 보스니아평화 협정에 공식 조인함으로써 현대 들어 인류최악의 민족분규가 종식되었다.

협정에 따라 ‘이슬람-크로아티아연방’(The Moslem-Croat Federation)과 ‘스르프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이 국가연합의 형태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을 구성하였다.

이렇듯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가형태는 1국 2체제라는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중앙정부가 존재하고 2개 하위 구성체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스르프스카 공화국(RS)이 존재한다.

두 공화국의 면적은 거의 같다.(보스니아 51대 스르프스카 49)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은 그저 ‘연방’으로 부른다. 매우 결속력이 역한 느슨한 연방이라는 의미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의 두 개의 공화국은 각각의 대통령과 수상, 그리고 의회를 두고 있다. 그리고 민족 간 분쟁을 막기 위하여 3개 민족의 대통령을 같이 선출한다. 3인의 공동 대통령은 8개월씩 윤번제로 정권을 담당하며, 그 아래 총리는 내각을 이끌고 있다.

4년이 임기이므로 두 번씩 ‘대표 대통령직’을 맡는 셈이다. 이처럼 말만 연방국가일 뿐, 보스니아는 사실상 두 개로 쪼개진 분단국가나 마찬가지다. ‘데이튼 평화협정’ 서명에 깊이 개입했던 미국과 유럽연합이 발칸반도에 더 이상의 국경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연방국가일 뿐인 것이다.

한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의원내각제의 양원제이다. 이들의 임기는 모두 4년으로 상원은(15석)과 하원(42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은 민주행동당, 세르비아민주당, 크로아티아민주연합 등이다.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선출된 하원은 42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그 중 28명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에서 선출되고, 14명은 스릅스카 공화국에서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상원은 15석으로 3대 민족계파별로 5석씩 구성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HDI 인간개발지수

HDI는 인간 발달의 세 가지 기본 차원에서 장기적인 진전을 평가하기 위한 요약 척도이다: 길고 건강한 삶, 지식에 대한 접근 및 괜찮은 생활 수준. 2021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HDI 가치는 0.780으로, 191개 국가와 영토 중 74개로 높은 인간 개발 범주에 속한다.

2000년과 2021년 사이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HDI 값은 0.667에서 0.780으로 16.9%로 바뀌었다.

2000년과 2021년 사이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출생 시 기대 수명은 0.8년, 평균 교육 연수는 4.4년, 예상 교육 연수는 2.2년으로 바뀌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1인당 GNI는 2000년과 2021년 사이에 약 83.8% 바뀌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GDP 순위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다. 나도 최근에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보다 담당국가로 배정받으면서 나라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겠다고 느꼈다

* 보스니아는 OECD 수원국 리스트에서 중소득국에 해당하는 국가이고 EU 후보국 지위를 획득했으며, 여느 동ㅇㅍ럽 국가와 같이 EU 회원국이 되기 위한 변화를 노력하고 있다

* 자료를 찾다가 EU에서 작성한 국가 리포트가 있는데, 다음번에는 해당 자료를 좀 번역해서 공부를 해봐야겠다

* 유럽 전체가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여전히 개발에 대한 협력이 필요한 나라들이 생각보다 많고 유럽지역에서는 개발협력뿐만 아니라 경제협력 차원과 외교차원에서의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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